매일신문

지방노동위 '뒤집히는 판정' 잦다

중앙노동위와 징계 형평성 차이·부실 심리 탓

지난해 9월 19일 모 농협에 수습사원으로 입사한 J씨. 고생 끝에 3개월간의 수습기간을 끝냈지만 농협 측은 J씨에게 면직을 통보했다. 고객들에게 불친절하고 근무평가가 좋지 못하다는 게 이유. 수습기간이 끝난 뒤에 해고통보를 받았다고 생각한 J씨는 경북지방노동위원회에 구제 신청을 냈다. 그러나 농협 측은 인사위원회가 열리기 전날, J씨와 9월 29일자로 근로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꾸민 뒤 J씨의 수습기간이 끝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경북지노위는 기간의 착오가 단순한 행정처리 과정의 미숙이라며 정당한 고용관계 해지로 판정했다. 그러나 중앙노동위원회는 농협 측이 그동안 3개월 수습기간 만료 후 본 계약 체결을 거부한 적이 없고 막연히 근무부적격이나 불친절은 해고의 합리적인 이유가 못된다며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모 대학교 점자도서관에서 일하던 K씨 등 3명은 5~10년간 도서관에서 매년 근로계약을 갱신하면서 일을 해왔다. 그러나 대학측은 지난해 초 근로자들에게 불리한 계약서를 내밀었고 K씨 등은 재계약을 거부했지만 결국 모두 계약해지를 당했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는 근로계약서에 큰 문제가 없고 대학 측이 재계약을 수차례 권고했는데도 거부한 것은 사용자의 책임이 아니라며 부당해고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나 판정은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뒤집어졌다. 중노위는 이들이 수년간 계속 근무해온 점에 주목, 사실상 무기계약근로자로 인정했고, 대학 측이 합리적인 이유없이 계약갱신을 거부했다며 부당해고를 인정했다.

경북지방노동위원회의 판정이 중앙노동위원회에서 뒤집히는 경우가 해마다 늘고 있다. 주로 징계의 형평성에 대한 견해 차이가 이유지만 심리 자체의 부실로 중노위가 이를 번복하는 경우도 적지않아 경북지노위에 대한 신뢰도가 떨어지고 있는 것. 경북지노위에 따르면 지노위의 초심이 취소된 부당해고나 부당노동행위 구제 신청은 지난해 13건에서 올 10월 말 현재 18건으로 크게 늘었다. 재심이 청구된 사건의 판정 유지율도 2004년 96.3%에서 2005년 87.9%로 크게 낮아졌고, 지난해는 89.6%였다가 올해는 10월 말 현재 76.6%에 그치는 등 무려 13%포인트나 떨어졌다. 초심이 취소된 17건 중 건설노조와 한국철도공사와 관련된 11건을 제외하면 개별 사건은 6건이었고, 이 중 심리가 미진했던 사건이 3건으로 절반에 이르렀다.

이처럼 지노위의 판정이 번복되는 이유는 일부 공익위원의 준비가 부족한 탓이라는 지적이다. 미리 관련 자료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법리적인 해석을 해야하지만 1시간 정도 진행되는 심리회의 내용에 의지해 판정을 내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또한 엄밀한 법 적용이 필요한 사안이 대부분이지만 공익위원 중 법 관련 종사자나 전공자의 수가 많지 않다는 점도 이유로 꼽힌다. 경북지노위의 공익위원 134명 중 변호사나 법 관련 전공 교수는 14명으로 경상계열이나 행정학, 사회학 등 사회학 계열의 전공 교수 28명의 절반 수준이다.

초심 번복이 잇따르면서 애꿎은 근로자들만 피해를 보고 있다. 중노위에 재심을 청구할 경우 최소 3, 4개월 정도 시간이 더 걸리고, 복직까지는 6, 7개월 이상 걸리기 때문에 구제 판정을 받고 복직을 하더라도 노사가 이미 감정의 골이 깊어져 적응에 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 노무법인 '함께' 이인찬 노무사는 "노동계 안팎에서는 지노위의 공익위원에 따라 판정이 크게 달라진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며 "해마다 구제 신청이 늘어나는 만큼 보다 전문성을 띨 수 있도록 공익위원이 구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경북지노위 관계자는 "해마다 구제신청은 느는 반면 재심신청률은 떨어지고 있고, 이는 그만큼 판정에 불복하는 경우가 줄어드는 것"이라며 "초심유지율이 떨어지는 것은 노동위의 문제가 아니라 공익위원들의 몫"이라고 해명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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