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대학입시는 수능 등급제 도입, 내신 등급간 격차 축소 등으로 논술의 중요성이 어느 때보다 커졌다. 논술을 요구하는 대학의 수도 크게 늘었다. 학교마다 논술 보충 수업이 열리고 일부에선 고액 논술과외까지 등장했다. 논술에 대한 부담감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학들마다 논술 출제 범위를 교과서라고 하나같이 입을 모으지만, 예시문항의 난해함만으로도 수험생들은 주눅이 든다. 제시문만 놓고 보면 인문계 논술인지 자연계 논술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경우도 있다. 모범 답안 몇 개 외운다고 해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논술 수험서에 의존해야 하는 일은 비극이다. 통합적인 지식과 사고력을 요구하는 것이 현재의 논술시험이라고 한다. 말이 쉽지 통합적인 지식과 사고력, 도대체 어떻게 해야 얻어지는 걸까.
한동안 읽기를 포기했던 책을 책꽂이에서 다시 꺼냈다. 지난여름 출간된 '과학 교과서속에 숨어있는 논술(나정민 글/살림 펴냄)'이다. 처음에는 그렇고 그런 논술책으로 여겼다. 이 책을 다시 펴게 된 계기는 최근 이 책의 저자가 모 일간지에 실은 글 때문이었다. '인간 본성은 이기적일까 이타적일까', '과학이 발달할수록 인류는 행복해질까' 등 누구나 궁금해할 만한 내용을 흥미롭게 다루고 있었다. 결론을 향해 종이 위를 달리는 문장의 힘은 논리적이고 명쾌했다.
인간의 이타적인 행위를 입증하는 과정에서 유명한 게임이론인 '죄수의 딜레마'를 예로 든 것이나,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동의 실상은 자신에 이롭기 때문이라는 '이기적 유전자'론은 무척 흥미로웠다.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는 타인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타적인 심성은 이기적인 심성만큼이나 생존에 필수적이라는 결론을 끌어내기까지, 상반되는 주장들을 맞세워 논증하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이 책은 '과학과 진리', '과학과 가치', '과학과 종교', '과학과 세계', '인간의 존엄성'등 4개의 방대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큰 주제 아래에는 11개의 논지가 전개돼 있다. 추상적으로 보이는 내용에 현실성을 불어넣은 힘은 각 장 서문에 적힌 교과서 발췌 내용이다. 과학, 윤리, 지구과학, 생물 등 각 과목이 등장한다. '과학으로 더 나은 세계를 만들 수 있을까', '과학은 윤리와 상관없는 객관적인 것인가', '과학적 지식은 진리가 될 수 있을까' 등 핵심 질문을 제시한 뒤 차근차근 질문에 답해가는 형식을 따라가다 보면 저자의 머릿속을 들여다보는 기분마저 든다. 우상론, 기계론적 세계관, 지적설계론, 천동설과 지동설 같은 과학이론과 지구온난화, 인간복제, 유전자 조작 등 과학계 이슈들의 기본 개념을 교과서에서 찾은 점도 돋보였다.
통합논술에서는 교과 지식의 현실 적용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주제보다 구체적이고 시사적인 주제를 선호한다는 얘기다. 일상생활 속 소재를 활용해 현실적인 문제 해결 능력과 대안 제시 능력을 평가한다. 이때 교과서 지문과 시사적인 주제를 결합하는 방식이 주로 쓰인다. 이 책이 영리하다는 생각이 다시 한번 든 것도 그 때문이다.
저자는 '과학자의 지식과 철학자의 시선'으로 다양한 논제를 다뤘다고 말한다. 대학에서 과학철학을 강의하는 저자의 내공이 돋보인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1. 사회진화론·생물학적 관점에서 보면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은 온전히 개인의 책임이다. 이 주장이 그릇된 이유를 인간 존엄성과 연관지어 책 속에서 찾아보자.
2. 생물학적으로 볼 때 이타성은 손해보는 짓이다. 그러나 이런 이타성이 인간에게 필요한 이유는 무엇일까.
3. 과학은 정말 가치중립적일까. 과학에 윤리성이 요구되는 이유에 대해 예를 들어 설명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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