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숫자로 본 2007년 한국 영화계

할리우드 기세에 눌리고, 관객은 줄고

올해 우리나라 영화계의 전체 분위기는 우울한 '블루'에 가까웠다. 스크린쿼터를 축소하고 외화 블록버스터들이 잇따라 흥행에 성공하면서 한국영화는 바닥을 면치 못했다. 올해 흥행 톱 10 중 7편이 할리우드 영화였다. 한국영화 '디 워'와 '화려한 휴가'가 '쌍끌이 흥행'을 했지만 침체의 대세를 바꾸진 못했다. 영화 '밀양'의 전도연이 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는 등 낭보를 전하기도 했다. 올해 영화계의 성적표는 어떨까. 숫자로 2007년 영화계를 정리해본다.

▶ 1조원

한국영화산업이 불법복제 및 불법다운로드로 1조 원에 가까운 피해를 보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달 초 열린 '한국영화 발전 포럼-한국영화 선순환 구조 확보방안'에 따르면 한국영화산업이 불법으로 피해규모가 9천362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2005년 불법피해규모인 2천816억 원보다 4배 가량 증가한 수치다.

최근 1년간 인터넷 및 모바일을 통한 영화 관람 경험률은 85%에 달했으며, 이중 무료 다운로드를 통한 영화 관람은 70%에 달했다. 앞으로도 무료 다운로드를 더 많이 이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에는 40%가 그렇다고 답해, 불법 다운로드 피해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 -30%

한국영화 관객 수가 전년 대비 30% 가까이 줄어들었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2007년 1월부터 11월까지의 전체 영화관객수는 1억 4154만 명으로, 지난해 1억 5040만 명에 비해 6% 감소했다. 관객수 감소가 이루어진 것은 이른바 '한국영화 르네상스' 1997년 이후 11년 만에 처음이다.

이 같은 현상은 한국영화 관객수 저하가 주원인이다. 전체 시장의 한국영화 점유율은 50%대로 크게 떨어졌으며 관객 수는 전년 대비 30% 이상 줄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통계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서울관객수는 2천51만 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관객수 2천800만 명에 비해 27%가 줄었다.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가 제시되고 있지만, 무엇보다 과열경쟁으로 인해 야기된 작품의 질 저하를 꼽을 수 있다. 지난해 108편에 이어 올해는 한국영화가 110편이나 개봉됐다. 참신한 아이디어 보다는 진부한 기획영화들이 훨씬 많아, 한국영화 외면을 부채질했다는 지적이다.

지난해 폐지된 이동통신사와 신용카드사 할인제도 폐지, 불법다운로드 폐해의 심각성 등도 한국영화로부터 관객들의 발걸음을 멀어지게 한 요인으로 분석된다.

▶ 1:912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상영된 영화 304편 가운데 절반 가량인 156편은 전국적으로 스크린을 50개도 잡지 못한 반면 16편은 스크린을 400개 이상 잡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영화의 양극화 현상이 극심했다는 방증인 것으로 풀이된다.

영화진흥위원회 영화산업정책연구소는 20일 '제3차 한국영화 발전 포럼 - 스크린 확보 전쟁' 토론회에서 국내 극장의 스크린 독과점 실태를 공개했다.

올 1~9월 상영작 가운데 '캐리비안의 해적-세상의 끝에서'는 무려 912개관(전국 기준)에서 개봉했으며 '스파이더맨3' 816개관, '트랜스포머' 717개관, '해리포터와 불사조 기사단' 691개관 등 할리우드 블록버스터가 국내 스크린을 한꺼번에 휩쓴 경우가 많았다.

개봉관을 많이 잡은 영화에 더 많은 관객이 몰려 양극화의 악순환도 나타났다. 스크린 당 평균 관객수는 400개 이상의 영화는 6천494명으로 50개 미만 영화 1천347명보다 5배 가량 많았던 것으로 분석됐다.

▶ 20만 명의 힘!

올해는 독립영화도 흥행이 '가능하다'는 가능성을 확신할 수 있는 한 해였다.

아일랜드 저예산 영화 '원스'가 20만 관객을 돌파해 국내에서 개봉한 인디영화로는 최고 흥행기록을 세웠다.

가난한 두 남녀가 음악으로 소통한다는 간단한 줄거리의 이 영화는 연기 경험이 전혀 없는 실제 뮤지션 글렌 핸사드와 마케타 잉글로바를 기용해 서정적인 음악을 들려주면서 국내 관객 사이에서 입소문을 탔다.

일본 홋카이도의 조선인 학교를 담은 다큐멘터리 '우리 학교'의 흥행 역시 주목할 만하다. 수 개월간 앙코르 상영된 '우리 학교'는 지난 8월, 7만 관객을 넘기면서 다큐멘터리 영화 사상 최고 관객 수를 기록했다.

인디영화의 경우 보통 1만 명을 넘기면 '흥행작', 4만 명을 넘기면 '대박'으로 꼽히는 만큼 이 영화가 모은 20만 명은 수백 개 스크린에 내걸리는 상업영화의 1천만 명에 버금가는 수치다.

이처럼 멀리 물 건너 온 영화 '원스'와 '우리 학교'는 진정성을 찾는 관객들의 저력을 보여줬다.

최세정기자 bezco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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