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뒤집기

40여 년 전만 해도 대부분 농촌에서는 해가 떨어지면 온 세상이 칠흑 같은 어둠이었다. TV는커녕 라디오조차 드물고 책과도 거리가 멀었다. 겨울밤이 더 길고 지루해질 수밖에 없었다. 어른들은 아랫목 이불 아래 발을 모아 넣고 이런저런 이야기로 무료함을 달랬다. 아이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긴장 속에서 다음 전개를 기다렸다. 곧잘 등장하던 캐릭터 중 하나는 소복에 긴 손톱, 산발 머리를 한 귀신이었다. 손톱과 머리카락은 사람이 죽은 뒤에도 계속 자라기 때문에 그렇게 된 거라는 설명이 덧붙여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엊그제 보도된 미국의 한 연구 결과는 그 해설이 터무니없는 엉터리라고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그 시절 우리 어른들이 열성으로 했던 아이 머리 빡빡 밀기의 효과도 부정했다. 머리카락은 깎아줘도 더 굵거나 짙게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른들이 늘 하던 '침침한 데서 글 읽으면 시력이 나빠진다'는 경계 또한 근거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연구는 '병원에서의 휴대전화 사용은 의료기기 오작동을 초래한다'는 현대적 주장마저 미신이라고 선고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도 여러 대중매체가 계몽에 열을 올리고 병원들이 호소문을 내걸어 자제를 요청하던 게 그 일인데 말이다. 첨단 지식인 줄 알았던 이런 것까지 뒤집히다니 황당하다.

하지만 우리를 당혹하게 하는 건 그런 것만도 아니다. 10년 만에 정권이 바뀌게 되자 지금까지 옳소! 하던 사람들이 이제 글렀소! 하고 나서는 일이 하나 둘 아닌 게 그 사정이다. 재경부는 그렇게 반대하던 종합부동산세 완화, 금산(金産) 분리 후퇴, 유류세 인하 등에 미리 알아서 나서기 시작했다고 했다. 공정거래위는 재벌 규제가 뭐 별거냐는 듯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도 가능하다는 쪽으로 선회할 모양이라 한다. 심지어 건교부는 이미 완성된 한 신도시 건설계획마저 포기할지 모르겠다는 소식이 있었다.

그럼 그동안은 옳고 그른 건 없고 억지만 있었다는 얘기가 되는 건가? 이렇게 해도 좋은데 구태여 그렇게 했을 뿐이라는 말인가?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하는 노랫가락이 절로 나올 지경이다. 그러고 보니 으악새 또한 새가 아니라 풀(억새)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가 다시 본래대로 새가 맞다는 재반박이 나와 우리로 하여금 뭐가 뭔지 모르게 만든 적 있었지 아마.

박종봉 논설위원 pax@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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