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이명박 손가락'

'우리가 남이가' 1992년 대통령선거 당시 한나라당의 전신 민주자유당이 유행시킨 선거 구호다. 부산'경남 출신인 김영삼(YS) 후보 측이 호남 출신인 김대중(DJ) 후보에 맞서 대구'경북 유권자들을 향해 영남권이 뭉치자고 제안한 것이다. 이 노골적이고 악의적인 지역감정 조장 구호의 효과는 컸다. 대구'경북 유권자들은 YS에게 표를 몰아주었고, 이후 각종 선거에서 지역주의를 선동하는 '저주의 주문'이 되었다.

그러나 영남인끼리 뭉치자고 강조한 이 구호는 선거 뒤 대구'경북 유권자들에게 '쓰라린 배신감'을 곱씹게 했다. YS의 문민정부는 선거 당시 압도적 지지에 대한 보상은커녕 대구'경북 출신 인사에 대한 숙청과 지역발전 소외로 응답했다. 더욱이 문민정부 말기 외환위기까지 초래되자, 'YS를 찍은 손가락을 잘라야 한다'는 自嘲(자조)가 한동안 지역을 휩쓸었다. 그래서 'YS 손가락'이 낙동강과 금호강에 둥둥 떠다닌다는 우스개도 나왔다.

이명박 당선자와 차기 정부에 대한 대구'경북인들의 기대가 자못 크다. 이를 경계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고향사람들이 이 당선자에게 지나친 요구를 할 게 아니라 묵묵히 지지를 보내는 성숙한 시민의식을 보여야 한다는 주장이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바뀌었어도 사람 사는 이치와 도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팔은 늘 안쪽으로 굽었다.

문민정부 이후 정권은 이전 군사정권과 달리 선거로 선출된 정부여서 정통성 시비에 휘말리지 않아도 됐다. 노태우 정권 때까지와 달리 '정권유지비용'이란 게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통령 출신 지역에 편향된 예산 지원과 개발사업이 가능했다. 대구'경북의 소외는 여기서 비롯됐다. 이 지역에서 유독 '박정희 향수'가 강한 것도 전두환'노태우정권과 달리 박정희시대에는 구미와 포항 등지에 국가공단과 포스코가 들어서는 등 지역 개발에서 수혜를 누렸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출범에 지역민들은 지역 발전에 대한 기대로 흥분하고 있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주목할 점은 수도권이 처음으로 지역주의 투표성향을 나타냈다는 것이다. 이 당선자가 압도적 표차로 여당 후보를 누를 수 있었던 것은 대구'경북의 일방적 지지뿐 아니라 수도권 유권자들이 행정수도 이전과 참여정부의 지역균형발전 정책에 마음이 토라졌기 때문이다. 이를 빌미로 수도권 언론들은 벌써부터 기업투자 환경을 개선하려면 맨 먼저 수도권 규제부터 풀어야 한다며 압박하고 있다.

'어리버리하게' 굴다간 대구'경북은 본전은커녕 종자돈마저 날릴 판이다. 그렇다고 고향 사람이 대통령 됐다고 무리한 요구를 내세워도 곤란하다. 자질구레한 요구는 삼가는 게 맞다. 작은 부탁을 자주 하면 큰 부탁은 못하게 되는 법이다. 이 당선자는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비롯해 대구'경북을 대상으로 많은 지역개발 공약을 내걸었다. 여러 공약을 모두 실행하지는 못하더라도 동남권 신공항을 비롯한 주요 공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대구'경북은 최근 우여곡절 끝에 경제자유구역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경제자유구역 중 유일한 내륙지역이다. 다른 지역과 비교할 때 접근성이 크게 떨어진다. 신공항 건설을 통해 접근성을 개선하지 않으면 외자 유치도 언감생심이다. 하지만 건설교통부는 신공항에 대한 입지, 규모, 경제적 타당성 등에 대한 2단계 용역비로 고작 4억 5천만 원을 배정했다. 신공항 건설에 대한 정부 의지를 의심케 하는 대목이다.

'경제 대통령'을 표방한 이 당선자의 가장 큰 과제는 양극화 해소와 일자리 창출이다. 대구'경북 경제자유구역과 신공항 건설 역시 지역 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것이다. 대구'경북인들은 지금 20년 만에 지역 출신 대통령이 선출돼 모두 들떠 있다. 그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은 그동안의 정권 상실에 따른 응어리 해소가 아니다. 지역발전에 대한 이 당선자의 공약 이행이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를 마치는 오는 2013년 'YS 손가락'을 자른 지역 유권자들이 'MB 손가락'을 자르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당선자의 가훈이 '정직'이라니 믿어보겠다.

曺 永 昌 논설위원 cyc58@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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