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추억여행]눈 없는 겨울...장독대에 눈 쌓였으면...

잠 덜깬 눈으로 방문열고 하얗게 변한 세상을 본다

눈 소식이 없다. 온난화니 뭐니 해서 눈 구경하기가 쉽지 않다. 겨울엔 제법 눈이 내려야 운치도 나고 눈 때문에 즐거운 하루가 가는데도 말이다. 눈이 내리면 아이들은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었다. 잠이 덜 깬 부스스한 눈으로 간밤에 장독대 위에 소복이 쌓인 눈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반갑고 기쁘던지...

눈이 내리면 아이들에겐 천국이나 다름없던 것은 그만큼 순수했기 때문이리라. 어른은 당장 농사 걱정, 눈 치울 걱정, 공연한 걱정거리만 앞설 뿐이다. 걱정거리 없는 아이들이 그래서 행복한지도 모른다.

눈이 내리면 맨 먼저 장독대로 뛰어가 알맞게 내려앉은 눈을 한 움큼 쥐고 입에 넣는다. 눈 맛을 본다. 어떤 녀석은 내리는 눈을 입으로 받아먹기도 한다. 소리를 크게 내면서 짭짭거리며 먹는다.

마당에서 눈사람을 만들고 동네 어귀로 나가면 눈싸움이 시작된다. 편을 갈라 담을 끼고 우물을 낀 마을 전투부터 시작하다가 나중에 규모가 커지면 논으로 나간다.

눈 벽돌을 만들어 참호를 짓고 눈 실탄을 만드는데 어떤 녀석은 눈에다 돌멩이나 연탄재를 섞기도 한다. 눈만 뭉쳐서는 멀리 날아가지도 않고 타격 효과도 적기 때문이다. 처음엔 제법 전략, 전술을 짜서 그럴듯한 공격과 수비를 하는가 싶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난투전이 벌어진다. 무조건 많이 던지는 게 전투의 기본이다.

눈싸움도 결국엔 돌멩이 섞인 눈 탄알을 한 대 맞고는 어떤 울보 하나의 울음보가 터지면 대충 전투가 마무리 지어진다. 그 다음 놀이를 골똘히 생각할 필요도 없이 천남이네 복숭아밭으로 썰매 타기 코스가 기다리고 있다.

천남이네 복숭아밭은 마을 뒷산에 45도 경사로 그야말로 천혜의 눈썰매장으로 손색이 없었다. 복숭아나무가 촘촘하지 않고 적당한 간격으로 심어져 있어 여럿 타기도 좋고 또 공중에 날아오르는 맛을 내기에 적당한 높이의 밭두둑도 있어 직선 코스, S자 코스, 장애물 코스, 밭 둔덕에 썰매가 잠시 받쳤다가 하늘로 날아오르는 공중 코스 등이 우리를 미치게 만드는 환상의 코스였다. 게다가 마지막 착지점인 밭 중턱 아래가 다랭이 논이라 가속도가 붙은 썰매를 정지시키기엔 제격이었다.

썰매는 원래 나무 판자로 만들어야 제격이지만 노란 쌀 포대나 가마니, 비료 포대, 양은 다라이 등 썰매 종류가 다양했다. 뭐든지 엉덩이에 붙이고 미끌어지기만 하면 되었다. 제법 아이디어가 있는 녀석들은 비료 포대 안에 엉덩이가 시리지 않게 신문지나 골판지, 헝겊으로 방석을 만들어 폭신폭신하고 엉덩이가 따뜻한 비료포대 썰매를 만들기도 했다.

한나절동안 꼬마들에 의해 반질반질해진 썰매장에서 사고도 더러 났다. 계속 썰매를 탄 아이들은 썰매판이 반질반질해져도 요령이 늘어 별 탈 없이 썰매를 타는데, 어디 갔다가 늦게 나타나서 처음 썰매를 타는 녀석들은 꼭 사고를 쳤다. 빙판이 되다시피 한 썰매장에서 안전하게 정지하려면 두 발로 빨라진 속도를 미리 늦춰야 하지만 신이 난 녀석들이 한참 재미에 빠져들다가 늦게 발 브레이크를 걸면 포대 따라 몸 따로 분리가 되어 복숭아나무 그루터기에 처박혀 머리에 혹이 생기면서 별구경을 하거나 심하면 코피가 터지거나 다리 하나가 분질러지기도 했다.

비료포대를 타는 데도 요령이 있어서 속도를 내려면 뒤로 누워야 되고 너무 급경사에서는 몸을 일으켜 세우는 등 자세를 잘 갖춰야 한다. 올 한 해에도 안전사고 없이 즐거운 눈썰매타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도심에서는 우방랜드, 허브힐즈와 같은 각종 놀이공원에서 눈썰매타기가 가능하고 농촌에서는 김천시 증산면의 옛날솜씨마을에서 타는 눈썰매도 괜찮다. 물론 눈이 왔을 때만 가능할테지만….

김천 옛날솜씨마을은 아흔 아홉 고개를 넘어서 만날 수 있는 산골 증산면 평촌리에 지난 2003년 10월에 마을을 조성했다. 이곳은 모든 농산물을 발효퇴비와 저농약으로 작목 재배하는 친환경농산물 생산이 자랑거리이며 두부와 가마솥 찐빵을 만들 수 있는 체험시설과 쉼터, 민속놀이터 등 옛 마당이 있고 비가 오거나 겨울철에 활용할 수 있는 실내 체험장이 있다.

주테마체험으로는 옛날에 쓰던 각종 농기구와 농촌생활용품을 전시해 놓은 농경유물전시관과 놀이체험으로는 계절별로 썰매타기, 옛날 눈 신발인 설피 신어보기, 마을 언덕배기에서 비료포대로 썰매 타기, 팽이치기, 자치기, 윷놀이, 널뛰기, 호드기피리 만들기, 땅 따먹기, 비석치기, 메뚜기 잡기 등 옛날 그대로의 놀이 문화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다.

연락처: http://somsi.go2vil.org, 018-780-0150

김경호 (아이눈 체험교육원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