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전인 2002년 대선 직후 "노무현은 인터넷이 만든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돌았다. 2002년 대선을 기점으로 인터넷은 시대의 물줄기를 바꿀 수 있는 아고라(agora·정치토론 광장)로 격상됐고 네티즌들은 미증유의 정치적 영향력을 만끽했다.
올해 대선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측한 사람들이 많았다. '2007년 대선은 블로거와 UCC(사용자 제작 콘텐츠)가 좌우할 것'이라는 예상이었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인터넷과 UCC는 5년 전과 같은 파괴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인터넷의 정치적 영향력은 종언을 고한 것일까.
◆블로그, 그들만의 리그였나?
인터넷과 블로그가 민심을 완전히 반영할 수는 없다. 그러나 올블로그와 오픈블로그 같은 대표적 메타블로그(블로그 글을 실시간으로 모아놓은 사이트)에는 이명박 후보에 대한 비판적 시각 및 BBK와 관련된 글, 포스팅이 하루 수십 개씩 생성되고 트랙백(블로그 댓글)들이 줄줄이 달렸다. 그러나 역대 최저(63%)의 투표율 속에 이명박 후보의 압승으로 대선이 끝나자 이들 메타블로그와 각 커뮤니티에는 패배감과 자조감이 담긴 글들이 줄을 이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인터넷은 웹2.0 등이 접목되면서 훨씬 진화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블로그다. 그러나 이번 대선에서 블로그의 영향력은 5년 전에 비해 훨씬 적어졌다. 블로그 세계가 나름대로 엄청나게 크다고 생각했는데 대선에서만은 그 폭이 좁았던 것 같다. 마치 블로그 였던 것 같다.'
'블로거들, 그리고 네티즌들은 온라인이라는, 광활해 보이지만 사실은 좁아터진 공간에서 그들만의 축제를 벌이고 있었다. 스스로 집단 자체를 과대 평가했을 뿐더러 온라인의 열기가 오프라인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착각도 거들었다. 네티즌·블로거들은 아무런 영향력이 없는 집단이다.'
◆블로거는 패배했나?
대선 전 블로거들은 정치적 격문들을 쏟아냈지만 표심을 이끌어내지 못했다. 개정된 선거법과 네이버의 정치 댓글 제한 등에 묶여 정치 기사의 댓글과 UCC도 이렇다 할 이슈를 생산하지 못했다. 그 원인을 놓고 메타블로그에서는 다양한 분석과 공방이 오가고 있다.
'그쪽 계열(네티즌·블로거)은 예전부터 들이었다. 말만 많은…. 지난 대선 때는 여러 변수들이 맞아 떨어져 광풍이 일어났던 거다. 오히려 인터넷 등에 국민들이 속은 것이었다.'(닉네임:tetris)
'인터넷에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다는 문국현 후보 정도가 의미 있는 성과를 거뒀다는 점을 미뤄보면 웹2.0의 거품이 꺼졌다고 확대 해석하기에는 다소 논리적 비약이 있는 것 같다. 2002년 때만큼 이라는 분위기를 주도하기 쉽진 않겠지만 앞으로도 인터넷은 시민사회의 여론을 전달하는 주요 미디어로 자리 잡을 것이다.'(닉네임:단청)
◆넷심=민심?
40·50대 인터넷 이용 인구가 급증하는 등 인터넷 이용자가 전 연령대로 확산되면서 '온라인=진보' '오프라인=보수'라는 등식도 깨졌다.
한국인터넷진흥원의 정보화 실태조사 자료에 따르면, 2001~2004년 사이 높은 상승세를 보였던 30대 이하 이용자 비중이 2005년을 기점으로 성장이 멈춘 반면, 40대와 50대 이용자 비중은 빠른 성장세를 나타내고 있다. 40대 이용자는 2007년 상반기 현재 648만 명을 기록하며 20대 이용자(726만 명)와의 격차를 줄이고 있고 이 추세대로라면 역전할 가능성도 있다. 50대 이상 이용자 비중도 377만 명까지 늘어났다.
블로거들의 무대인 메타블로그를 비롯한 인터넷을 동일한 생각과 정치적 신념을 가진 집단으로 판단하는 것 자체가 오류라는 지적도 있다. 메타블로그는 단일한 의견을 가질 수 없는 사이버 공간인데, 일부 블로그 베스트글을 인터넷 여론으로 생각해 이번 대선 결과를 전체 블로거의 패배로 비화하는 것은 논리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전문가 의견은
이번 대선에서 인터넷의 영향력이 2002년만 못한 데 대해 전문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세헌 경북대 교수(정치외교학과)는 "2002년 대선에서 인터넷 선거 혁명을 이룬 20·30대들 가운데 상당수가 5년이 지난 지금 보수화되는 등 우리 사회의 보수화 경향이 있었고, UCC·정치댓글에 대한 법적 규제가 강화된 것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인터넷의 대선 영향력 약화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그는 2002년 대선 이후 인터넷에 대한 정치적 기대나 환상이 생겼지만, 이후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와 지방선거에서 인터넷은 이렇다 할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한 점을 예로 들었다.
최민재 한국언론재단 연구위원은 "이번 대선에서 1·2위 후보 간 지지율 격차가 2배 이상 벌어질 정도로 일방적 판세가 진행되면서 선거판이 네티즌들의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했다."면서 "네티즌들의 정치적 댓글 등이 많이 생산되긴 했어도 선거판에 거의 영향을 미치지 못했고 이는 대선에서의 인터넷 영향력 쇠락으로 나타났다."고 해석했다.
김해용기자 kimh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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