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5일 서울 광화문 복원 현장을 폭 41m·높이 27m의 전면 가림막 작업 '광화문에 뜬 달'(부제:산, 바람)이 가렸다. 세계 미술의 중심지 뉴욕에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설치미술가 강익중(47)이 6개월 동안 밤잠을 설쳐 가며 작업한 '광화문 프로젝트' 결과물이다.
가로·세로 각각 60㎝의 나무합판 2천611개를 동원한 대형 작업으로 각 합판에는 민족의 염원을 담은 달(항아리)과 산을 그렸다. 멀리서 보면 인왕산을 배경으로 광화문이 들어서 있는 형국이다. 이 대형 설치물은 28일 조명 점등을 통해 밤이면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26일 오후 7시 30분 리안갤러리에서 열린 특강을 위해 대구에 온 강익중은 이번 '광화문 프로젝트'를 두고 '민족을 위한 기도문'이라고 정의했다. 작업 내내 '우리 민족이 잘 되게 해주십시오.'라고 기원했다는 설명이다. 그래서 "작품을 보는 국민 모두가 '내년에는 무언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밝혔다.
"대구 방문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그는 팬들과의 만남을 '삶에 있어서 작은 기차 여행'에 비유하며 "같은 차 안에서 같은 창밖을 바라보는 것과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서로 생각에 작은 자국을 만들어 가기'를 희망했다.
작가의 이야기는 미국 프랫인스티튜트에서 맺어진 이호영 리안갤러리 아트 디렉터와의 인연으로 이어졌지만 이내 끊겨 버렸다. 이내 "말주변이 없다."며 방청객들의 질문을 유도한 그의 말문은 방청객이 질의를 하면서 확실히 트였다. 일단 뉴욕의 미술시장에서의 생존법과 고 백남준 선생과의 인연에 이어 불교적 색채 등으로 질문이 이어지자 자신이 느끼고 경험하고 생각하는 바를 막힘 없이 털어놓은 것이다.
그는 강의 말미에서 스스로도 "샛길로 잘 샌다."고 표현했을 정도로 이런 일, 저런 경험에 대해 엄청나게 많은 얘기를 쏟아냈다. 강익중은 "작가는 왼쪽에는 과거와 전통을, 오른쪽에는 미래와 비전을 담고 있는 '장대를 들고 외줄을 타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뒤 "멀리 보는 작가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에서 20년 넘게 살았음에도 "첼시 화랑을 한 번만 가보고, 휘트니미술관도 전시회 때 처음 가봤다."고 고백한 그는 "성공이란 바로 내 곁에 있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미술관·전시장을 다니면서 인맥을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작품을 많이 파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대신 그는 "정직을 바탕으로 창의적으로 사고하며 자기에 충실할 것"을 주문했다. 그리고 "연을 높이 날린 뒤 날려 보내듯이, 그리고 풍선을 불고 나서 하늘로 날려 보내듯이 변신하고 이를 두려워하는 작가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는 강연 뒤 '어떤 작가로 기억되고 싶으냐?'는 기자의 질문에 한참을 고민하다 "무한히 꿈꾸는 작가"라고 답한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전시에서 처음 만난 작가에게서 "세계적인 미술가치곤 매우 순수해 보였다."는 한 큐레이터의 평이나 "강한 신앙을 바탕으로 이것저것 재지 않는 순수함이 강점"이라는 이호용 디렉터의 인물평에서도 이를 엿볼 수 있다. '전략 없는 전략', 어떻게 보면 '가장 순수한 작가로서의 사명'이 그를 지금의 자리에 있게 한 원동력이었던 것이다.
질문에 대한 답이 길어지면서 30분으로 예정됐던 특강은 1시간을 훌쩍 넘겨서야 끝이 났지만 그의 '말 주변 없는 열강'에 지겨워하는 방청객은 아무도 없었다. 강익중은 강의 전반 "'30세기에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라는 미래 비전을 보여준 고 백남준 선생을 존경하고, 이를 바탕으로 작업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러한 작가정신과 얼굴에서 풍기는 순수함과 열정은 그의 최근 작업인 달항아리와 무척이나 닮아 있다. 이날 특강은 바로 이 점이 강익중의 달항아리가 한민족은 물론 세계 미술 애호가들의 관심을 끄는 주원인임을 말해주는 자리였다.
조문호기자 news119@msnet.co.kr 사진·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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