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일 오전 5시 30분쯤 대구 남구 대명9동에서 싼타모 차량과 1t 화물차 방화 사건이 잇따라 발생했다. 경찰은 사건 현장 인근에서 서성거리던 용의자를 붙잡았지만 용의자가 끝까지 범행 사실을 부인, 사건 규명에 진땀을 뺐다. 그러나 발뺌도 잠시, 용의자는 결국 사건 일체를 자백했다.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에서 내민 '증거' 때문. 볼펜 길이보다 짧고 엄지손가락 굵기 정도의 휴대용 현미경으로 손등과 손톱, 옷, 신발 등에서 찾은 증거를 내밀었던 것. 휴대용 현미경으로 손등 털끝이 녹은 것을 발견, 증거로 제시할 때까지만 해도 계속 부인하던 용의자는 불꽃이 튀면서 옷 섬유가 미세하게 녹은 것과 신발 섬유 조직에 남은 그을음 등 미세 증거를 잇따라 제시하자 결국 범행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CSI, 게 섰거라!'
2007년은 대구의 과학수사가 빛났다. 각종 과학기술 신기법 개발과 상·특진 등을 휩쓸며 CSI 못지 않은 저력을 뽐낸 것. 선진과학기술을 개발·적용해 차량 방화범 등 사건을 해결한 것은 물론 대통령상, 특진, 우수학습조직 선정, 우수 논문상 등을 수상하며 올해를 '대구 과학수사의 해'로 만들었다.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가 올해 거둔 가장 큰 쾌거는 고가의 기존 현장 검증 시약을 대체할 저비용·고효율 시약을 개발한 것. 과수계는 기존 시약이 비싸 현장 활용에 어려움을 겪자 의료용 잠혈반응 키트를 활용, 3개월간 실험을 거쳐 기존 시약 가격의 10%대인 대체 시약을 자체 개발했다. 이들은 이를 6월 경찰청 시연회를 통해 전국에 보급했고, 7월에 특허출원, 10월엔 정부혁신 우수사례 경진대회에서 영예의 대통령상까지 받았다. 덕분에 김기정 경위는 지난달에 제3회 과학수사대상을 수상해 경감으로 특진했고, 과수계 임채원 검시관도 특진을 앞두고 있다.
이뿐 아니라 현장 증거물 수집 시 중요한 혈흔 수사를 위해 미국 등 선진국에서 활용하고 있는 혈흔형태분석 기법을 국내 최초로 도입, 수사연구지에 연재하는 한편 전국 경찰청 과학수사요원을 대상으로 혈흔형태분석 교육을 실시하는 등 경찰 과학수사 역량 강화에 큰 역할을 했다. 이는 직원들이 사비 800만 원을 털어 자체 실험실을 설치, 10개월여 연구 끝에 이룬 결과였다.
또 미세증거의 중요성을 인식, 미세증거 채취기법 등에 대해 집중 연구해 달서구 차량연쇄 방화범, 군부대 절도범 등의 범행을 밝히는데 큰 공을 세웠고, 이 기법은 논문으로도 발표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우수 논문상을 받았다. 휴대용 현미경 보급·활용 등 미세증거 채취기법은 지금까지 유력 용의자를 잡고도 결정적인 증거를 확보하지 못해 겪던 어려움을 한 방에 날려버렸다. 또 최근엔 올해 중앙인사위 연구비지원 우수학습조직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물론 이러한 '영광' 뒤엔 어려움도 적잖았다. 가장 큰 어려움은 바로 선입견과 고정관념. '개발 및 연구 예산도 부족한데 힘들지 않겠느냐'는 주변의 시선과 선입견 때문에 포기하고 싶을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다는 것. 게다가 실제 지원도 충분하지 않아 사비를 털어 연구·개발에 나서야 했다. 혈흔형태분석 실험실을 만들 때도, 대통령상을 받은 혈흔 및 정액반응검사 신기법 개발, 휴대용 현미경 구입때도 주변의 반응은 차가웠고, 경비 부족에 시달려야 했다는 것.
최준영 대구경찰청 과학수사계장은 "예산과 인력 부족, 주변의 시선에 따른 사기 저하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새로운 것을 추구, 도전하고 반드시 해내고야 말겠다'는 과학수사 직원들의 도전정신"이라며 "이러한 도전정신을 발판으로 내년에도 각종 현장 증거물을 자체 분석·감정할 수 있는 다기능 증거분석실 설치 및 신기법 연구·개발 등을 통해 대구 경찰의 과학수사 수준을 한 단계 더 끌어 올릴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호준기자 hoper@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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