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안농산 폐업 1년…끝나지 않은 전쟁

"새해에도 문닫힌 회사로 출근해야 하나요"

▲ 정안농산 근로자들은 벌써 1년 넘게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정안농산 근로자들은 벌써 1년 넘게 끝이 보이지 않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정안농산 해고근로자 김창근(40) 씨는 오늘도 '일할 수 없는 일터'로 향한다. 직장을 잃은 지 벌써 1년. 만성 희귀질환으로 약을 입에 달고 사는 아내와 어린 두 자녀를 남겨둔 채 내딛는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치매를 앓고 있던 아버지는 노인병원으로 모셨지만 마음이 영 편치 않다. 지난해 12월 4일, 회사 측은 '주문 물량이 없으니 1주일만 쉬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걸로 끝이었다. 임시 휴업은 곧 폐업으로 바뀌었고, 김 씨는 다음해 1월 31일자로 정리해고됐다.

몇달을 버티다 실업 급여를 신청했다. 90만 원 남짓한 실업급여로 6개월을 버텼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또 다시 몇달을 버티고 있지만 이 지루한 싸움의 끝은 보이지 않는다. "이 친구 집에서 쌀을 가져오고, 저 친구 집에서 김치를 받아오는 식이지요. 이제 친구들도 슬슬 피한다니까요." 우스개처럼 툭 뱉았지만 자조의 쓴웃음은 숨겨지지 않았다.

27일 찾은 대구 달성군 논공읍 김치제조업체 정안농산. 공장은 이미 오래전 문을 닫았지만 일자리를 되찾기 위한 이 곳 근로자들의 싸움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농성장 입구에 걸린 '농성 387일째'라는 글자판은 이들의 고통도 그 숫자만큼 쌓여있음을 보여주었다. 농성장 안은 따뜻한 겨울을 맞고 있는 바깥세상과는 달리 차갑기만 했다. 바닥에는 널찍한 스티로폼이 깔려 있었고, 시커멓게 그을린 전열기와 몇 장의 전기장판이 있지만 차갑게 식은 이들의 가슴을 덥히기엔 턱없이 모자랐다.

지난 1월 31일 자로 해고된 근로자는 56명. 이 중 43명이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 힘겨운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대부분 김치공장에서 절인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던 40, 50대 여성들이다.

회사 측의 폐업에 맞선 근로자들은 '위장폐업'을 주장했다. 서울과 대구의 본사 사무소, 대구노동청과 달성군청, 경북지방노동위원회 등 관계기관들을 찾아다니며 부당함을 호소했다. 그러나 위장폐업 혐의는 대구노동청의 압수수색에도 최근 무혐의로 가닥이 잡혔고, 부당해고 구제 신청도 경북지노위에서 기각당했다. 중앙노동위에 재심을 신청했지만 아직 심리 날짜도 잡히지 않은 상태. 다만 지난 2005년 노조 설립 당시 회사 측의 부당노동행위에 대해서만 소액의 벌금형 처분이 내려질 전망이다. 김명숙(43·여) 씨는 "최저임금만 받고 하루에 8시간 넘게 서서 일하면서도 내 회사라는 생각으로 땀을 쏟았는데 돌아온 건 일방적인 폐업과 해고 통보였다."며 "관련 기관에서는 법적으로 문제가 없고 딱히 해결방법이 없다는 얘기만 거듭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회사 측은 공장 건물과 설비 매각을 추진 중이다. 1~3공장 중 1공장은 지난 4월 한 식품업체에 매각됐지만 2, 3 공장은 아직 마땅한 인수자가 없다. 50억~80억 원에 이르는 매각대금을 치를만한 대형 업체가 나타나지 않은 탓이다. 이에 비례해 근로자들의 사정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지난 4월, 1공장을 인수한 업체 측에서 농성장을 비워달라고 요구하고 있어 연말까지 지금의 농성장을 떠나야 한다. 아직 매각되지 않은 2, 3공장으로 농성장을 옮기려 했지만 회사 측에서 법적 조치를 하겠다며 강하게 반대하는 것도 큰 부담이다.

이들이 원하는 건 '일자리'다. 새로 인수자가 나타나더라도 재취업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것. 인수자가 초기 운영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거나 노조에 부담을 느낀다면 노조 쟁의의 최소화와 임금 삭감까지도 감수하겠다는 게 근로자들의 입장이다. 윤순희(44·여) 민주노총 대구 일반노조 정안농산지회장은 "여성근로자들 상당수가 중소기업에서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혹사당하고 있지만 일방적으로 해고를 당해도 마땅히 호소할 방법조차 모를 정도로 법의 사각 지대에 방치되고 있다."며 "함께 살 수 있는 방법도 있을텐데 왜 이렇게 근로자들에게 가혹한지 모르겠다."고 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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