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데스크칼럼] 100번째 원숭이와 빈배의 오류

미국의 과학자 라이언 왓슨이 자신의 저서인 '생명조류'에 소개한 내용 중 '백 마리째 원숭이 현상'이라는 것이 있다.

'일본 미야자키(宮崎) 현의 무인도인 고지마(幸島)에 사는 천연기념물인 원숭이는 처음에는 밭에서 캐낸 흙 투성이의 고구마를 먹었다. 그러나 어느날 한 원숭이가 고구마의 흙을 털어내고 강물에 씻어 먹기 시작했고 점차 다른 원숭이 대부분도 따라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강물이 마르자 원숭이들은 바닷가로 가서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먹었다. 그런데 바닷물에 씻어 먹는 고구마는 소금기가 배어 맛도 좋았다. 그래서 원숭이들은 전처럼 통째로 씻어 먹지 않고 바닷물에 한 입 베어먹고, 또 담가서는 베어먹는 식으로 간을 맞춰 먹는 행동이 나타났다. 원숭이들 사이에 고구마를 바닷물에 씻어 한 입 베어먹는 방식이 늘자 이번에는 고지마와 전혀 교류가 없던 다른 지역 원숭이들 사이에서도 똑같은 행위가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났다. 바다로 둘러싸인 탓에 다른 곳의 원숭이들은 고지마 섬과는 전혀 접촉도 없었고 의사소통도 할 수 없어 모방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는데도 말이다….'

즉 왓슨의 '백 마리째 원숭이 현상'은 '어떤 행위를 하는 개체 수가 일정량에 이르면 그 행동은 그 집단에만 국한되지 않고 거리나 공간을 넘어 확산되는 것'을 의미하며 백 마리라는 것은 그 경계가 되는 일정량을 편의적으로 수치화한 것이다.

'백 마리째 원숭이 현상'은 물리학에서 이야기하는 '결정적 다수'(critical mass)와도 일맥상통한다. '결정적 다수'는 핵반응을 일으키기 위해서는 충분한 양의 방사선 물질이 필요하다는 이론이다. 즉 벽난로를 예로 들면 나무토막 한 조각을 불 붙여도 그 하나로는 계속 타지 않으며 두 개의 나무토막이 있으면 각 토막이 서로의 열을 방사해 불꽃이 지속되며 계속 연소되는 것처럼 어떤 행위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적정 수준의 행위자가 필요함을 일컫는 이야기다.

원숭이 한 마리의 '先行'(선행)이 다른 원숭이에 의해 모방되고 이는 또 다른 원숭이들에게 '전염'돼 결국은 원숭이 세계 전체에게 확산됨은 물론 전혀 교류가 없던 곳으로까지 퍼지고 적정 수준의 '行爲者'(행위자)가 있으면 그 사회 전체로 그 '行爲'(행위)가 확산돼 퍼져간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일들이 바로 지금 필요한 것은 아닐까. '경제만큼은 살리겠다.'는 이명박 당선자의 경제살리기공약이 성공을 거두기 위해 '백 마리째 원숭이'가 돼 보는 것은 어떨까. 한 때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소외'됐지만 과거 근대화의 주역이 그랬던 것처럼 다시 한 번 경제살리기에 동참해 '신바람나는' 역할을 해보자.

예로부터 우리에겐 바로 '신바람에 살고, 신바람에 죽는' 경향이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동안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氣(기)가 움츠려들었다. 진보와 보수라는 케케묵은 이념 싸움에, 아전인수식의 개혁드라이브, 빈부격차의 확대, 코드인사 등에 지쳐 지난 5년동안 우리들은 피곤에 찌들어 신바람을 잊고 지내온 것이다.

그러나 이젠 털고 일어나자. 전국 꼴찌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라도. 이미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얼마전 열린 대구상공인들의 송년회에는 지난 10년 이래 가장 많은 상공인들이 모여 생기 넘치고 활기찬 송년모임을 가졌다고 한다. 이 모임이 뜨거웠고 활기찼던 것은 아마도 CEO출신의 이명박 당선자가 앞으로 5년간 차기정부를 책임지게 됐다는 사실과 지역경제 살리기에 남다른 역할을 해 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 때문이었으리라. 아울러 이 당선자의 대구·경북발전을 위한 公約(공약)들도 살갑게 느껴졌을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전국 최고의 투표와 지지로 앞으로 5년간 국정을 맡도록 해 준 만큼 이명박 당선자가 우리 지역민들에게 어떻게 약속을 지키고 이행하는지를 잘 지켜보는 일이다. 그리고 이 당선자가 흔히 개혁세력이 빠지기 쉬운 '빈 배의 오류'(empty vessels fallacy)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감시하는 일이다. 흔히 개혁을 시작하는 세력들은 개혁을 받아들여야하는 사람들이 개혁에 대해 적절한 경험이 부족한 백지상태라고 착각하는 바람에 개혁의 성공적 정착이나 확산을 이끌어내지 못하는 잘못을 犯(범)한다고 한다. 이명박 당선자가 새정부 출범과 함께 경제살리기 관련 개혁을 추진함에 있어 '빈 배의 오류'를 저지른다면 참여 정부와 다를게 뭐가 있겠는가.

정인열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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