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양대를 졸업하고 1986년 삼성에 입단할 당시 성준(현 롯데 투수코치)은 그다지 잘 알려지지 않은 투수였다. 다만 여느 신인과 다르게 그는 학구파에다 노력형이었다. 매사에 신중해 몇 번을 생각하여 결정하는 심사숙고형인 데다 차분하고 느긋한 성격이었다.
정말이지, 성준은 서두르는 법이 없었다. 같이 식탁에 앉아서 가장 늦게 식사를 끝내는 단골 멤버였고 정시에 출발하는 버스에 10초 카운트 다운을 하면서 올랐다. 그런 그의 성격 때문인지 성준은 이만수와 8년간 같은 방을 쓰는 룸메이트가 됐다. 둘 다 규칙적이고 모범적이라는 공통점을 가져 궁합이 정말 잘 맞았기 때문이었다.
성준은 입단 때 백넘버 14번을 달았다. 그리고 스스로 두가지 목표를 정했다. 그의 배번처럼 14년 동안 지속적으로 선수 생활을 하는 것과 매년 10승씩 기록해 통산 140승을 달성하는 것이 그의 소원이었다. 첫 해 15승을 거둔 성준은 이듬해 방위병으로 근무하면서도 4승을 올렸고 복무 후 3년째 11승을 거두면서 통산 30승을 기록했다.
그러나 투수의 어깨는 쓰면 쓸수록 닳는 분필과 같은 것. 4년째 팔꿈치와 어깨 부상이 겹치면서 재활훈련이 반복되자 그는 앞만 보고 달려온 자신을 되돌아보았다. 오랜 상념 끝에 그가 깨달은 것은 두 가지였다. 그 하나는 스스로가 평범한 투수라는 점이었고 또 자신의 신체가 영원히 젊지 않다는 것이었다.
그는 스스로 목표를 14년간 100승으로 낮췄다. 그리고 김시진이나 선동열, 최동원 같은 대투수가 아닌 평범한 투수가 14년 동안 프로 세계에서 버티려면 오로지 체계적인 몸 관리와 승부의 진화 밖에는 없다고 보고 새롭게 변신하기 시작했다. 체인지업을 연마해 승부구로 가다듬었고 등판 이틀 전부터 이미지 트레이닝을 강화했다. 가상의 승부를 예상하면서 어떤 볼 배합으로 상대할 것인지 미리 9이닝을 스스로 그려보는 훈련을 해답을 얻을 때까지 반복했다.
실전에서도 매 이닝을 마치고 덕아웃에 돌아와서 그저 쉬지 않았다. 다음 이닝에 상대할 타자의 특성을 한번 더 체크하고 점수 차와 상황에 맞는 전략을 구상했다. 그의 치밀한 계산과 노력 덕분에 1991년부터 5년간 그는 49승을 올렸다. 통산 85승.
해마다 0.5km씩 떨어지던 직구 스피드가 시속 136km에 머문 1996년, 그는 또 한번 변화를 시도했다. 유별나게 긴 투구의 시간차 변화가 그것이었다. 타자나 심판은 지연되는 시간 때문에 못마땅했고 관중들은 흥미 감소를 들어 비난했다. 그러나 성준은 개의치 않았다. 그것은 오직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전략이었을 뿐이었다.
결국 1999년을 끝으로 그는 14년의 선수생활을 채우고 은퇴했다. 그리고 통산 97승을 남겼다. 비록 100승을 채우지는 못했고 평범했으나 부단한 노력과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것만으로도 그는 뛰어난 투수였다.
최종문 대구방송 해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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