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妻家시대

지금 여든 살 내외 노인들이 처녀총각이었던 시절만 해도 대개 신랑신부는 서로 얼굴도 모르는 채 혼례를 치렀다. 배우자는 매파가 양가 부모를 오가면서 결정됐으며, 신랑신부는 신방에 들어서야 처음으로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딸을 新行(신행) 보내고 돌아오는 친정 아버지는 남몰래 눈물을 씻었고, 시집 동네에선 새색시 얼굴 구경하려는 이웃들로 북적거리곤 했다. 말 그대로 '여자가 시집가고 남자가 장가들던' 시절이었다.

가까이로 시집간 딸들은 가끔씩이나마 친정 부모를 만나러 올 수도 있었지만 멀리 시집간 딸들은 그럴 형편이 못됐다. 대부분 딸들은 한 번 시집간 후로는 그야말로 '구름에 비 떨어지듯' 친정 발걸음이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부모상 같은 큰 일을 당해서야 겨우 친정에 올 수 있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남자들 역시 처가를 찾을 일이 그다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핵가족화, 맞벌이 부부 급증 등 사회 변화에 따라 처가와의 거리가 급속하게 가까워지는 추세다.'멀수록 좋다'던 '처가와 변소'는 이제 가까울 수록 좋은 것으로 바뀌어지고 있다. 신혼부부들에게 일상의 축은 시댁, 본가에서 친정, 처가 쪽으로 빠르게 옮겨가고 있다.

최근 한국사회학회 세미나에서 발표된 '한국 기혼남녀의 결혼만족도'관련 논문에 재미있는 내용이 담겨 있다. 한국인의 가족관계가 아내와 처가 중심으로 바뀌어지면서 아내가 장녀인 남성일수록 결혼만족도가 매우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여성은 남편이 장남이더라도 결혼만족도에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것이다.

취업 여성 증가로 자녀양육을 친정부모에게 의지하는 가정이 크게 늘어나면서 특히 장녀와 결혼한 많은 남성들은 '미우나 고우나' 처가를 가까이 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아내와 처가의 위상이 높아지는 것은 당연한 추세. 처가덕을 톡톡히 보는 경우도 많지만 스트레스를 겪는 경우도 적지 않다. 지난 날 여성들이 장남에게 시집가기를 꺼려하던 것과 달리 남성들이 장녀와 결혼해 맏사위가 되는 것을 기피하는 현상마저 나타나고 있다 한다. '시집살이 스트레스' 대신 앞으로는 서구 사회처럼 남성들의'처가 스트레스'가 깊어지려나. 이래저래 세상 참 많이 달라졌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