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막 내리는 정해년, 시민들 고민은 '경제'였다

▲ 사람들의 온갖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원들은 새해엔 고민거리가 줄어드는 세상이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 사람들의 온갖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원들은 새해엔 고민거리가 줄어드는 세상이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대구 생명의 전화'와 신용회복위원회 대구사무소의 상담 창구.

"당신은 어떤 고민거리를 갖고 있습니까?" 남녀노소 또는 빈부를 막론하고, 누구나 한두 가지의 고민거리를 갖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2007년에도 사람들의 고민거리는 그다지 줄어들지 않았다. '생명의 전화', '여성의 전화', '신용회복위원회' 등의 상담 창구를 통해 올 한 해 대구·경북 사람들이 무엇을 고민했는지를 알아봤다.

"2007년 대구의 고민은 □□였다."

-----------------------------정답은 '경제'

"남편이 보름째 집에서 술만 마시고 있어요. 무엇 때문에 그러느냐고 물어도 아무 얘기도 하지 않고, 저와 애들에게 짜증만 냅니다. 무슨 일이 생길까 걱정이 돼요."(50대 여성)

"대학을 졸업한 지 몇 년이 되도록 취업을 못해 정말 괴롭습니다. 아직까지 일을 하시는 부모님들을 뵈면 더욱 마음이 아파요. 밤에 잠을 못자는 것은 물론 우울증에 빠질까 두려워요."(20대 후반 남성)

▶고민 70%가 경제 문제

1985년 개원한 '대구 생명의 전화'에서 3년째 상담원으로 자원봉사를 하고 있는 김모(49·여) 씨. 그녀는 전화로 고민을 털어놓는 사람 10명 중 7명꼴로 경제와 연관되는 문제로 괴로워한다고 귀띔했다.

"가족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에서 보름 동안 홀로 술을 마시는 그분도 짐작건대 일이 어려워졌기 때문으로 보였어요. 직장을 구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20대 청년의 전화를 받고서는 저도 마음이 아프더군요. 남들의 시선에 신경을 쓰기보단, 스스로가 원하고 재미를 느끼는 분야에서 일자리를 찾아보라는 말로 위로를 했습니다."

부부 갈등이나 가족들의 불화도 그 근본 원인을 추적해보면 경제 문제로 결론이 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구 여성의 전화'에 상담을 해온 40대 초반의 한 여성은 40대 후반인 남편의 실직 이후 부부 갈등이 심해졌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일자리를 잃어 하루 종일 집에 있는 남편을 대신해 몇 달전부터 바깥 일을 시작했는데 조금만 늦게 귀가하면 "누구하고 바람을 피웠느냐?"며 남편이 욕설과 함께 주먹을 휘둘렀다. 이 여성은 "가장의 자리가 위축돼 괴로워하는 남편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터무니없는 핑계를 대며 갈수록 괴롭히는 남편을 보면 정말로 힘이 든다."고 하소연했다.

외환 위기 이후 경제 능력에 타격을 입은 남성이 속출하면서 생업 전선에 나선 아내의 늦은 귀가, 자녀 양육과 가사문제로 인한 가족 간 갈등도 빈발해지고 있다. '여성의 전화'에서 4년째 자원봉사를 하는 공옥희(53·여) 씨는 "부부갈등이나 그로 인한 이혼 문제가 상담의 60~70%를 차지하고 있다."며 "갈등의 원인을 찬찬히 찾아보면 경제적인 문제로 드러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얘기했다.

▶안타까운 사연도 문제는 경제

다중 채무자들의 신용회복을 지원하는 신용회복위원회 대구지부 상담창구에도 올 한 해 안타까운 사연들이 쏟아졌다.

한 20대 미혼 여성은 폐암에 걸린 아버지, 신부전증을 앓는 어머니의 병원비를 감당하는 과정에서 본인은 물론 가족 모두가 신용불량자가 돼 상담 창구를 찾았다. 카드 회사의 심한 채무 독촉 등으로 회사까지 그만뒀던 이 여성은 채무조정을 통한 장기분할 상환으로 신용불량의 멍에에서 벗어났고, 지금은 다시 취업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비닐하우스에 불이 나는 바람에 큰 빚을 진 40대 남성, 자녀 학자금 및 본인의 병 치료 등으로 채무를 안게 된 50대 여성도 신용회복위원회의 도움을 받아 생활에 안정을 찾았다.

신용회복위원회 대구지부에 신용회복 지원을 신청한 사람 중 30대가 36.8%, 40대가 33.8%로 전체의 70.6%를 차지, 30, 40대 가장들이 심각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현실을 반영했다.

▶"새해에는 고민거리 줄어들기를"

짧게는 하루 4시간에서 8시간씩 사람들의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원들의 새해 소망은 똑같다. '여성의 전화' 상담원 ㅂ씨(48·여)는 "대구와 경북의 경제 사정이 갈수록 악화됨에 따라 그로 인한 부부갈등 등 고민이 늘어난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며 "새해에는 경제 활성화로 일거리가 많아져 취업난 등 사람들의 고민거리가 줄어들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이경미(33·여) '생명의 전화' 소장은 "열심히 노력했지만 하는 일이 잘 안풀리자 전화를 걸어 상담원에게 욕설 등 화풀이를 하거나 세상에 대한 원망을 쏟아내는 분들도 있다."며 "다가오는 새해엔 고민 때문에 삶을 힘겨워하기보단 즐겁게 인생을 사는 분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고 말을 맺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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