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속의 새
황성곤
광년을 달려와 빛이 된 투명한 새
망막에 앉은 기억, 때 늦은 아픈 고백
이른 봄
번갯불 튄 그대 스르르 한 점 불이었던
빅뱅의 환상이거나 눈부신 기록이었을
이별 뒤 하얀 여백 지울 수 없는 허공 같아
가락지
흰 원을 걸어 필생의 울음 가둔 걸까
수축하는 잔등, 달이 팽창하는 저 언덕
환각처럼 눈 속의 새 쪼그려 앉아있는데
우수수
눈망울 털어내면 겨울 그 후, 빈 고요
▧당선소감-살아있음이 희망이다
햇살이 따뜻한 창가
화분에 꽃 피운 나무 한 그루 유심히 본다.
뿌리를 드러낸 동백 같기도 하고 철쭉 같기도 한, 나무이고자 하는 그의 집중은 모든 내 상상의 말들을 수렴해간다.
무엇을 말했지만 나는 듣지 못했음으로, 그가 나무 안에서 꽃 한 송이 들어올린다. 발밑이 아득하고 흔적 없는 곳에서 바람이 인다.
아직 여물지 못한 내 언어가 심하게 흔들릴 때, 나는 왜 너보다 앞선 나였을까?
경계를 허물지 못한 나무 앞에서
아프다.
꽃과 짐승과 사람들이 또한 아프다. 선홍빛 언어를 열고 나오면 자음과 모음을 버린 신의 음성을 곧 만나리라. 하여 저 완성된 언어의 세계에 한없는 경배를 올린다.
내 비록 어긋난 문법으로 세상이 낯설지만, 친구여 누이여 이웃이여 사랑의 한 몸으로 항상 충만하고 행복하시길. 오직 살아있음이 희망이고 기쁨이며 한편의 詩인 것을….
끝없는 어원의 탐색을 새롭게 인도해주신 심사위원님 그리고 당선의 영광을 양보해주신 분들에게 죄송함과 더불어 고개 숙여 감사 드립니다. 보답으로 미숙한 언어를 갈고 닦아 세상의 맑음을 비쳐 보이겠습니다.
끝으로 평소 지도해주시고 누구보다도 기뻐해주신 양점숙 시인님과 청문학동인 화시동인 문우 여러분에게 고마움 전하며 당선의 영예와 기쁨을 함께 나눕니다.
황성곤 씨
◆약력 △1960년 전북 익산 출생 △전주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청문학동인, 화시동인
▧심사평
최종까지 거론된 이들은 황성곤, 유현주, 박해성, 박선미, 최재남, 박미자 등이었다. 당선작으로 뽑은 황성곤의 '눈 속의 새'는 특이한 시적 언술 방식을 보인다. 그가 함께 보낸 다른 세 편들도 그런 점에서 이채롭다. 범상치 않은 언어 운용으로 읽는 이의 눈길을 끌어당기기에 부족함이 없는 자력과 흡인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오랜 시력에서 기인된 바도 있겠지만, 새로운 것이 과연 어떤 것인지와 세계와 자아의 교호 속에 어떻게 언어가 제대로 된 개성적인 이미지를 빚어낼 수 있는지에 대한 투철한 인식과 공정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체득된 기량이라고 생각한다.
대상에 대한 섬세한 묘사를 통해 심미적 재현을 성취하고 삶의 원리를 비밀스럽게 드러내는 이러한 형상 능력은 다른 많은 응모작들의 가장 앞자리에 세우기에 모자람이 없다. 또한 엄정한 정형 형식에 크게 구애되지 않으면서 시상을 자유자재로 전개하는 활달한 수사법이 담긴 내용과 적절한 조화와 균형을 유지하고 있는 점도 신뢰를 더한다.
형식을 부리는 능력을 웬만큼 갖추고 있으나, 그리 놀랍지 않은 일상사를 평이하게 그리고 있는 점은 적잖은 응모자들에게서 공통되게 드러나는 문제점이다. 또한 상당한 수련의 흔적이 엿보임에도 끝까지 한 호흡으로 끌고 가지 못하거나, 참신한 발상을 제대로 살리지 못해 아쉬움을 느끼게 하는 작품들도 더러 눈에 띈다.
표피적 묘사를 넘어서서 대상의 본질적인 국면을 관통하려는 상상적 언어의 힘을 보여주는 일에 힘을 기울일 때 고유의 형식과 결합하여 보다 밀도 높은 언어 예술적 성취가 가능할 것이다. 이 점은 당선자나 모든 응모자들이 함께 되새길 일이다.
이정환(시조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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