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새로운 한 해의 소박한 소망

가까운 친구 아들 녀석이 학교에서 장난을 치다가 연필 깎는 칼에 베여 손바닥의 힘줄과 신경이 파열되었다. 응급으로 힘줄과 신경을 연결하는 수술을 받고 일주일 정도 입원을 했다. 퇴원 하는 날, 친구는 불평 아닌 불평을 늘어 놓았다.

수술 후 경과나 재활 치료에 대한 걱정은 제쳐두더라도 가족 중 한 사람이 매일 돌아가면서 환자 보호자로 병실에 같이 있어야 하고, 보호자 침대에서 새우잠을 청해야 하는 일이 너무나 불편했던 것이다. 또한 평소에는 퇴근하면 집에 가서 가족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같이 TV를 보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잠을 자는 그런 일상 생활들이 당연한 것인 줄 알았는데, 이런 것들이 모두 깨어지니 직장 생활까지 엉망이 되더라는 것이었다.

평소에 가족끼리 보내던 별다른 의미가 없어 보였던 많은 시간들이 결코 무의미 한 것이 아니었고, 그런 순간이 너무나 소중한 순간들이었다는 것이다.

임종을 앞둔 말기 암 환자들이 자신의 죽음에 대해 불안해 할 때 일주일에 두 세 번씩 방문해 말 벗이 되어주고, 정신적 친구가 되어주는 사람들의 방문을 받는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강력하게 죽음을 거부하던 환자가 '죽음'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나면, 무척이나 순수하고 아름답게 세상을 바라본다고 한다.

휠체어에 몸을 의지하고 병실 밖의 풍경을 바라볼 때면 하찮은 자연의 현상들 즉, 바람이 불고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과 비가 오고 다시 해가 나타났다가 구름 속으로 들어가는 것들이 임종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는 더없이 아름다운 자연 현상으로 보인다. 이들에게 이러한 풍경들은 자기 생애에서 어쩌면 마지막으로 볼 수 있는 것일지도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참다운 가치의 상실과 철학의 빈곤 그리고 결과 위주의 속도주의로 무엇이 올바른 길인지 조차 잘 알 수 없는 혼란한 상황이다. 그럴수록 중요한 것은 우리들 자신 만이라도 주위의 모든 환경과 사람들에게 항상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일상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또 한 해가 새로이 시작된다. 그냥 저절로 다가오는 시간들이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나 소중하고 애틋한 시간들이다. 신께서 부여한 삶의 새로운 순간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한 번쯤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다. 일상에서 생기는 즐거움과 행복에 늘 감사할 줄 알고, 가장 가까이에 있는 가족과 직장 동료 그리고 이웃들에게 먼저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을 보여야 할 것이다.

우상현(성형외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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