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2008 신춘문예] 동시 당선작-이윤경 作 '벌들의 이사'

벌들의 이사

이 윤 경

봄바람이

먼 곳의 꽃소식을 전해옵니다.

나직한 언덕에

아카시아가 하얗게 피고

장수말벌도 벌집나방도 없는

작은 마을이 있더랍니다.

아카시아가 눈처럼 지고나면

알싸한 꽃향기 퍼지는

오래된 밤나무 숲도 있더랍니다.

일벌들이

바빠집니다.

이삿짐을 싸고

귀하신 여왕님을 둘러싸고

떼를 지어 날아갑니다.

지도는 없지만

꽃냄새 꿀냄새 따라

먼 산골로 이사를 갑니다.

▧당선소감

나는 행복한 동화책 배달부다. 트렁크 가득 동화책이 든 가방을 싣고 아이들 집, 작은 초인종을 누르면 쪼르르 달려와 새 가방을 들고 좋아하는 아이들을 보면 행복해진다. 내가 처음 가졌던 동화책은 언니가 사준 '잔다르크'였다. 30여 년이 지났지만, 그 책의 표지도, 냄새조차도 기억이 난다.

당선 소식을 전해 듣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또렷하게 기억하지 못하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아버지와 소통하는 유일한 곳이 일기장이었고, 수많은 편지를 하늘로 써 보내곤 했다. 그러면서 나는 시를 좋아하게 됐고, 무턱대고 외우고, 또 외우며 언젠가 시인이 될거라는 꿈을 꾸었다.

아카시아가 피고 밤 숲이 무성하던 고향집 뒷산에서 윤동주처럼 별을 헤어보기도 하고, 오래된 기와집들 사이로 아름드리 회화나무가 그림처럼 서있는 마을을 내려다보면 가슴이 뛰곤 했다. 그런 기억들을 잊고 산 줄 알았는데, 또렷이 되살아나 내 글의 주인공이 되어주고 있다.

잠자던 내 감성을 깨워주신 정순희 선생님,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고 가르쳐주신 최춘해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따뜻한 고향집을 감나무처럼 지키고 계신 내 어머니, 새벽마다 예배당에 무릎 꿇고 기도하시는 시어머니, 두 어머니께 처음으로 사랑하고 존경한다고 말하고 싶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현실이 되게 해주신 매일신문에 감사드리고, 부족한 제 글에 당선의 영광을 주신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윤경 씨

◆약력 ▷1971년 경북 성주 출생 ▷혜암아동문학회·경북아동문학회 회원 ▷산사랑 시 공모전 대상 수상.

▧심사평

지난해보다 다소 많은 610여 편의 응모 작품에 대해 '소재 선정의 참신성', '시적 메시지의 적절성', '시적 표현의 독창성', '동시로서의 눈높이', '신인으로서의 가능성' 등을 관점으로 심사했다.

먼저 응모 작품 전체를 읽으면서 심사 관점에 근접한 작품이라고 생각되는 이윤경(대구) 장현옥(부산) 이우식(강원) 반영호(충북) 유정숙(경기) 이영미(부산) 박현숙(경기) 조율(전남) 류지우(서울) 씨 등 아홉 분의 작품을 뽑았다.

다시 아홉 분이 보내 온 작품 전체를 몇 차례 거듭 읽으면서 당선 후보작으로 뽑은 것은, 반영호 씨의 '나무와 새', 이우식 씨의 '민들레 홀씨 속엔', 조율 씨의 '우주과학교실', 이윤경 씨의 '벌들의 이사' 등 네 편이었다.

반영호 씨의 '나무와 새'는 동심의 눈높이에 적절한 시적 표현과 시의 전체적인 짜임새가 돋보였으나, 첫째 연의 소재인 '병아리, 어미닭'이 둘째 연 이후의 소재 '새'로 연결되는 부분에서 소재의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한 것이 흠이었다.

이우식 씨의 '민들레 홀씨 속엔'은 민들레 홀씨에서 유추해 낸 다양한 소재들을 시적으로 형상화한 능력이 뛰어났으나, 소재들의 나열로 인한 시의 흐름이 설명적이고, 중심 메시지가 분명하지 못하다는 것이 결점이었다.

조율 씨의 '우주과학교실'은 시속의 화자가 지구가 아닌, 또 다른 태양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생활을 구사한 시적 표현이 매우 돋보였다. 그러나 시 전체를 한 개의 연으로 구성함으로 인한 시의 긴장감 부족과 메시지를 담아야 할 시의 주제가 산만한 것이 흠이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이윤경 씨의 '벌들의 이사'는 꽃을 찾아가는 벌의 이동을 중심 주제로 설정하고, 이를 시적으로 형상화하기 위한 소재 선정이 다른 응모자들의 작품과는 차별성이 있다는 점에 관심을 두었다. 또한 시의 도입 부분에서부터 마지막 부분까지의 흐름이 매우 일관성 있게 구성된 시의 짜임도 매우 돋보였다. 시가 소박하면서도 잔잔한 여운을 느끼게 하나, 산문 형식의 시 문장으로 인한 함축과 절제가 다소 부족한 것이 결점이었다.

이윤경 씨의 경우 지난해까지 수 년간 응모한 작품들이 계속 최종심까지 오른 것이나 함께 보내 온 다른 세 편의 작품을 통해 동시인으로서의 충분한 발전 가능성을 짐작할 수가 있었다. 따라서 이윤경 씨의 응모작 '벌들의 이사'를 당선작으로 결정하면서, 계속 노력하여 훌륭한 동시인으로 대성하기를 바란다.

권영세(아동문학가)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