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공룡 부처

경제기획원, 재무부, 상공부 장관을 역임한 나웅배 전 경제부총리는 3개 부처 장관의 특징을 이렇게 표현한 바 있다. "경제기획원 장관은 아너러블(honorable)하고 재무부 장관은 파워풀(powerful)하며 상공부장관은 컬러풀(colorful)하다." 90년대 중반쯤 나온 것으로 기억되는 이 말은 바로 개발연대 경제부처의 특성을 가장 압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지금도 경제관료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경제기획원 장관이 영광스러운 것은 1962년부터 1996년까지 7차에 걸쳐 수립된 '경제개발5개년계획'을 수립한 경제수석기구의 장으로, 경제운용의 밑그림을 그리는 컨트롤타워였기 때문이다.

재무부장관이 힘이 센 것은 돈줄을 쥐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정된 자원(돈)으로 경제개발을 하기 위해서는 자원의 인위적 배분이 필요했는데 그 기능을 재무부가 담당했던 것이다. 재무부의 힘이 얼마나 셌던지 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재무부 사무관이 시중은행장에게 호통을 치는 것은 예사였다고 한다.

재무부가 돈줄을 지배했다면 상공부는 산업을 지배했다. 개별 산업과 기업을 주무르고 많은 산하단체를 거느리며 행사에 참여할 곳도 많았다. 그래서 상공부장관은 화려해보였다.

그런데 1994년 영광스러움과 막강함이 합쳐진 조직이 생겨났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가 통합된 재정경제원으로 예산, 기획, 세제(경제기획원)에다 금융(재무부)까지 장악한, 말 그대로 공룡 부처였다. 일본 大藏省(대장성)의 한국 버전이라는 말도 나왔다. 재경원은 외환위기로 금융감독과 예산 기능을 박탈당하면서 재정경제부로 재편됐지만 파워는 여전하다는 평가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국가경제발전전략을 주도할 정부 조직을 만들 것이란 얘기가 나오고 있다. 경제정책의 기획'조정기능이 약화돼 이를 강화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라고 한다. 인수위 측은 부인하고 있지만 결국 재경원의 재탄생이 될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시대착오적이다. 재경원은 외환위기를 불러왔다. 위기를 예측하지도 못했고 위기가 목전에 왔는데도 경제기초여건이 괜찮다며 허세를 부렸다. 권한은 막강했지만 위기대처 능력은 제로였다. 재경원 같은 공룡부처의 효율성은 이미 검증됐다. 경제위기라는 수업료는 한번만 치르는 것으로 족하다.

정경훈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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