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색 남]소설 '핑퐁'-박민규

"왜 살고 있는지 꼭 알아야 하나요?"

만일 지구를 그대로 유지할 것인지, 아니면 빙하기 같은 것을 거쳐 다시 재생성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다면, 당신의 선택은?

'안심해. 안심해도, 좋아.' 책의 첫 페이지에서 이렇게 안심하라고 말하던 박민규는 인류를 소멸시켜 버린다. 물론 책 '핑퐁'에서. 그리고는 끊임없이 "왜 살고 있느냐?"고 묻는다. "이렇게 살아도 될까?"라고 자문하게 만든다. 하긴 그의 이전 소설에서 눈치 챌 수 있어야 했는지도 모르겠다. 단편 '카스테라'에서 중국과 미국은 물론 아버지와 친구들, 햄버거 가게 등 좋은 것과 나쁜 것들을 모두 냉장고에 넣고 네모난 카스테라로 만들어버린 그였으니…. 박민규는 '냉장고 문을 연다. 코끼리를 넣는다.

냉장고 문을 닫는다'는 방식으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니 세상을 없애버리는 것쯤 어렵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박민규가 인류를 버릴수록 그는 한국문학에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되어가고 있다. 문학평론가 백낙청만 해도 단편집 '카스테라'를 읽고 '한국문학의 보람을 읽었다'고 했으니…. 구어체 같은 문체, 인터넷 소설을 읽는 것 같은 행 구분, 탁구 치는 장면에서 책 두 페이지 분량을 '핑퐁'이란 단어로 채우는 식의 자유로운 구성과 사고는 독특함을 넘어서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두 명의 중학생이 있다. 나는 '못'이고 친구는 '모아이'다. 물론 별명이다. 머리를 얻어맞는 모습이 못을 치는 것 같아서 '못'. 큰 머리가 남태평양 어느 섬에 있는 석상을 닮아서 '모아이'. 두 명은 한 세트다. 세트로 치수 패거리에게 맞는다. '치수' 패거리는 폭력과 약탈, 심지어 원조교제까지 시키는 인물이다. 악하다는 단순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 못과 모아이는 삥을 뜯기고 맞으면서 점점 가까워진다. 치수에게 얻어맞은 어느 날 못과 모아이는 빈 공터에서 탁구대와 소파를 발견한다. 그리고 탁구를 친다.

탁구 용품을 구하던 중 이들은 쎄끄라탱을 만난다. 쎄끄라탱에 의해 이 두 명의 중학생은 지구의 운명을 걸고 탁구경기를 하게 된다. 상대는 음식이 공급되면 기계적으로 탁구만 치도록 훈련된 새와 쥐. 새와 쥐는 인류의 대표다. 그럼 못과 모아이는? 세상을 끌고나가는 2%에도,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나머지 98%에도 들지 못하는, 세계가 존재 자체를 '깜박'한 인물인 셈이다.

경기 결과는? 못과 모아이 팀이 이긴다. 점수는 낮았지만 새와 쥐의 과로사 탓이다. 모아이는 탁구 경기 전 인류가 거쳐 온 모든 과정을 보았다. 학살, 전쟁, 문화, 철학, 예술…. 망설임 없이 결정한다. '언인스톨!'.

박민규는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서 '그렇게 살지마'라고 얘기하다가 '카스테라'에서 '니들 그렇게 살면 카스테라로 만들어버린다'고 경고했다가 '핑퐁'에서 드디어 '내가 경고했지?' 그러면서 인류를 없애버린다. 핑퐁은 줄거리로 얘기할 수 없는 소설이다. 한 없이 단순한가 하면 끝없이 복잡하다. 소설은 일종의 액자소설 형식을 띤다.

중간 중간에 가상의 작가 '존 메이슨'의 소설들을 넣었다. 존의 유작으로 등장하는 '여기, 저기, 그리고 거기'에는 이런 얘기가 나온다. '깜박'에 관하여. 쉰을 넘긴 남자가 아주 사소한 것들, 예컨대 '전등을 끄고 나왔나? 가스는 잠갔나?'에 대해 '깜박'하는 자신을 본다.

그렇게 하루를 '깜박' 속에 보낸 그가 쇼핑을 마치고 집에 도착. 장 본 것을 문 앞에도 두고 차를 향해 돌아서는 순간, 차가 없다. 다시 돌아보니 집도 없다. 텅 빈 공간에 혼자 서 있다. 그는 세상을 '깜박'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세상이 그를 '깜박'한 것은 아닌가?

세상이 깜박한 인물인 주인공 '못'이 주로 경험하는 것은 배제다. 소외가 아닌 배제. 모든 세상이 다수결에 의해 움직이고, 다수결이 만든 것을 사용한다. 사람들은 다수에서 배제당하지 않기 위해 다수가 원하는, 다수가 결정하는 방식에 따라 조용히 살아간다. 다수인 척 하면서. 그래서 가끔은 '내가 왜 살고 있나?' 생각하게 된다. 뭔가에 이끌려 사는 것은 아닌지, '살아가는'게 아니라 '살아지는' 건 아닌지를.

박민규는 인류가 생존해 온 것이 아니라 잔존해 왔다고 생각한다. 만약 생존한 게 맞다면 60억 중 누구 하나는 그 이유를 알고 있어야 한다고. '우리가 대체, 왜, 살고 있는지를.' 그런 박민규에게 '박민규식'으로 묻고 싶다. 그의 책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에 나오는 질문을 빌어서.

"꼭 이겨야 하나? 지면 어때? 꼭 무엇이 되어야 하나?"

그리고 덧붙이자면

"왜 살고 있는지를 꼭 알야야 하나?"

박민규는

1968년 울산 출생. 중앙대 문예창작과 졸. 2003년 '지구영웅전설'로 문학동네 작가상 수상. '삼미 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한겨레문학상 수상. 2005년 소설집 '카스테라'로 신동엽창작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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