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횡재에 관하여]큰횡재는 사돈의 팔촌 아는사람의 것

미안하지만 횡재는 없다, 횡재라는 것은 이상하게도 나는 주인공이 아니며 대체로 옆집 사람도 아닌 그냥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니까.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일을 예측할 수 있는 안정감을 느끼며 제대로 먹고 사는 문제다.

몇 년 전 나도 암담한 한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물론 지금은 딱히 사정이 썩 좋아졌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정말로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던 시절이었다. 그런 시절이 5년을 지나면서 깊은 우울함과 대상이 불분명한 분노가 가슴 깊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가식과 위선이 아니라면 한 점 웃음도 지을 수 없는 시절이었다. 물론 그 중심엔 경제 문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마 2005년 설 시즌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 데 대구에 오기 위해 서울역에 갔을 때였다. 플래카드 하나가 서울 역 앞 공중에 매달린 채 찬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무슨 플래카드인가 하고 시선을 주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플래카드에 'KTX 4인 돈방석 할인 판매 개시'라고 써있었던 것이다. 나는 흥분해서 옆에 서있는 남편 팔을 잡고 흔들었다.

"저기 봐, 돈방석을 판대."

남편의 시선이 내가 가리키는 플래카드로 향했다.

"무슨 헛소리야, 저건 동반석을 할인 판매한다는 이야기잖아."

남편의 핀잔 섞인 말에 다시 한 번 플래카드를 쳐다보았다. 분명 '돈방석'이었던 글자가 어느새 '동반석'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이상하다. 좀 전엔 정말 돈방석이었단 말이야."

횡재의 꿈이 그야말로 신기루처럼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남들 배우는 만큼은 배우고 상식이 부족하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도 한 순간 내 눈에 '동반석'이 '돈방석'으로 보였던 것이다. 절박한 심정과 절박한 상황이 현실엔 있을 수 없는 일을 보게 하고, 믿게 만들고, 사람을 어리석게 만들었던 것이다. 동반석이 결코 돈방석일 수는 없고, 세상에 공짜가 없다는 것은 만고불변의 진리임에도 정말 내겐 동반석이라는 글자가 돈방석으로 '보였고' 한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설레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돈벼락을 맞는 횡재의 꿈은 사라졌고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인간이란 핀잔을 들었지만 즐거운 기대로 머리가 아찔해지는 경험과 순간의 설렘은 나쁘지 않았다. 횡재는 그런 것이다. 누가 횡재를 했다는 '카더라' 통신은 심심치 않게 들려와도 정작 그 주인공이 '나'는 아니고 옆집 누구도 아니고 그냥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의 사돈의 팔촌이기 일쑤인 것 말이다.

미안하지만 횡재는 없다, 횡재라는 것은 이상하게도 나는 주인공이 아니며 대체로 옆집 사람도 아닌 그냥 아는 사람의 아는 사람에게나 해당되는 일이니까.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내일을 예측할 수 있는 안정감을 느끼며 제대로 먹고 사는 문제다. 누구도 그것을 부정할 수는 없으며 부정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인간은 돼지 이상의 존재이기도 하니까. 만약 최근 댓글 놀이에서 보여지듯이 '…이면 어때, 경제만 살리면 되지.'가 실상 현실이 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에 해당되는 수다한 인간적 가치들을 희생시킨 결과가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아무튼 횡재의 꿈은 좋은 것이다. 예상치 못한 일이니만큼 기분 좋게 가슴도 철렁하고 마구 설렌다. 하지만 그것이 결단코 실현 불가능한 꿈일 뿐인지 실현 가능한 것인지는 잘 따져볼 필요는 있는 것 같다. 열망이 지나치면 없는 것도 있는 것으로 보게 되고 불가능한 것도 가능한 것으로 믿게 되니까. 새해가 밝았다. 이맘때면 누구나 한두 가지 소망을 품는다. 게다가 올해는 새 정부가 출범하는 해이기도 하다.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앉는 횡재의 꿈이 아니라, 돈이 돈을 벌고 부자만 더 부자가 되는 경제가 아니라 없는 사람들도 미래의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그런 경제, 세상 한 구석에서만 샴페인이 터지고 휘황한 네온사인이 쾌활하게 어둠을 비추는 경제가 아니라 화려하지 않아도 좋으니 평안하고 안온한 빛이 세상 구석구석까지 두루 미치는 그런 경제를 새로운 정부가 실현시켜 주리라 믿어보는 것도 좋겠다. 어떻게 생각하면 참 소박한 꿈이지만, 내년엔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든지 꿈에나 그리던 이성을 애인으로 두게 될 것이라든지 아이가 갑자기 공부를 잘 하게 된다든지 뭐 그런 작은 횡재를 기대해 봐도 되지 않을까. 횡재라고 꼭 거창해야 할 이유는 없으니까.

이지영(2000년 매일신문 신춘문예 당선'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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