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 조명암을 통해 본 '시인과 시대'

하늘이 하도 높아 땅으로만 기는/ 강원도 칡넝쿨이/ 절간 종소리 숙성히도 자라났다// 메뚜기 베짱이들이/ 처갓집 문지방처럼 자조 넘는 칡넝쿨// 넝쿨진 속에 계절이 무릎을 꿇고 있다/ 여름 한나절 꿈이 향그럽다/ (중략) 어린 소녀의 사랑처럼 온 칡/ 모르게 모르게 무성해 간다// 가사를 수한 젊은 여승이/ 혼자 다니는 호젓한 길목에도/ 살금살금 기어가는 칡넝쿨이언만// 해마두 오는 가을을 넘지 못해/ 목을 움츠리고 뒷걸음을 치는 식물// 칡넝쿨이 안보이면/ 먼뎃절엔 등불이 한 개 두 개 열린다'('칡넝넝' 일부분).

이 시를 쓴 조명암(1913~1993)은 1930년대 대표적인 시인이자 희곡 작가이며 대중가요 작사가이다. 그는 130여 편의 시를 쓰는 동시에 대중문화에도 관심을 보이며 500여 편에 달하는 대중가요 가사를 창작하였다. '바다의 교향시' '신라의 달밤' '꿈꾸는 백마강' '알뜰한 당신' '목포는 항구' '세상은 요지경' 등….

지금까지도 모임이나 노래방에서 애창되는 수많은 일제강점기 대중가요들이 그의 손을 거쳐서 나왔다. 그러나 정작 그가 쓴 노래는 열심히 부르면서도 조명암이라는 이름이나 그의 시를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왜냐하면 분단의 조건 속에서 월북이라는 이유로 반세기가 넘도록 묻혀져 온 까닭이다.

일본 와세다대학 불문과에서 공부하고 모더니즘이라는 고급(?)한 문학을 하던 그가 작사가로서 대중가요 창작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일은 참 특별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이는 조명암이 학승으로서의 삶을 살았던 봉건사의 영향이 적지 않다고 하겠다. 봉건사는 대중불교 운동에 지대한 관심을 가졌던 사찰로, 그는 대중적인 가요를 통해 민중의 보편적인 정서와 애환을 다루고 그들의 삶을 어루만지며 당시의 생활과 시대상을 절제된 언어로 나타냈던 것이다.

조명암은 매우 특별한 이력을 가진 문학인이다. 일제 말에는 다수의 친일 작품을, 해방기에는 사회주의 이념에 충실한 시들을 발표했으며, 월북 후에는 김일성 우상화 작업에 앞장섰다. 그의 변화는 우리 근대사의 굴곡에 다름 아니었다.

새해 벽두에 조명암을 새삼 떠올리는 것은, 문학이 지극히 개인적이고 파편적인 행위로 흘러가고 있는 이때, 시대를 고민하며 장르와 이념을 넘나든 이 시인을 기억하고 그의 가요와 시작품들을 찾아 한번쯤 음미해보는 것도 나름대로 의미 있는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서영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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