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책] 다시 못 올 '청춘', 그래서…

나이 먹는 즐거움/박어진 지음/한겨레출판 펴냄

2008년 새해. 또 한 살을 먹는다. "인생에 무슨 모범 답안이 있겠는가? 하루하루를 잔치처럼 살자!" 대학생 딸과 고3 아들의 엄마이자 주말 남편이 있는 평범한 아내. 쉰이 넘어 28년간의 직장생활을 퇴직한 그녀에게 찾아온 것은 우울증과 갱년기.

시쳇말로 손끝이 저려오고, 무릎이 시큰거리고, 눈이 침침하다는 50대 '3종 우울세트'를 선물 받은 그녀가 '인생 2모작'을 위한 갱년기 보고서를 냈다.

'나이 먹는 즐거움.' 화투판에 돈 잃고 좋은 놈 없듯이, 나이 먹어 즐거운 놈 없다. 그러나 지은이는 '해피 버스데이 투 미'를 외친다. 왜냐하면 설경구가 '박하사탕'에서 "나 돌아갈래!" 고함쳐도 결국 돌아갈 수 없었듯이, 머리채를 잡아챈다고 세월이 거꾸로 갈 일은 없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자칭 파티광이다. 그렇다고 고무장갑처럼 빨간 긴 장갑을 끼고 드레스를 떨쳐입고 가는 파티가 아니다. 고3 아들이 주민등록증을 받아온 날, 딸이 생리가 시작되던 날 맥주를 사다놓고 파티를 한다. 딸이 무사히 MT를 마치고 왔다고 한잔, 벚꽃 피었으니 한잔, 오렌지빛 저녁노을에도 한잔…. 이런 식이다.

라틴댄스를 배우러 다니고, 이주여성노동자센터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친구들과 앙코르와트와 러시아 여행을 다니면서 새로운 인생의 후반전을 시작했다.

자신을 위해 잔치만 벌이자고? 아니다. 지은이는 후반전에 돌입하면서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하고 있다. 가족들과 오밀조밀 싸우면서 조화롭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결혼 안식년 도입을 주장하기도 하고, 아픈 남편을 보며 가족 연대의 필요성을 들려준다.

또 자신에게 스스로 행복해지라고 말한다. 그녀가 만난 컴퓨터를 배우려는 60대 할머니. "왜 컴퓨터를 배워요?"라고 묻자 "집안에 있으면 뭐해. 전화 안하는 자식 원망이나 하고. 그냥 배우는 게 재밌고 좋아. 동영상도 올릴 수 있고. 컴퓨터, 이거 알고 보니 완전 신세계야."라고 했다. 다양한 중년의 초상을 제시하며 스스로를 치유하며 보듬는 지혜를 설명하고 있다.

또 나이 든 여성의 색다른 역할 모델에 대해서도 역설한다. 문화재해설사라는 직종에 도전하고, 불법 체류 여성 노동자들의 상담 도우미를 자청하고, 동네의 아기 보기 서비스도 도전한다.

한편 피해갈 수 없는 죽음에 대한 준비도 잊지 않는다. 병원에 자기 몸을 기증하는 등 남다른 장례식 준비에 대해서도 들려준다. 에필로그도 유서로 대신하고 있다.

못 먹는 막걸리 한 사발 놓고 떠드는 것과 같은 재치 있는 수다와 세상에 대한 거침없는(?) 자세, 그 속에서 느껴지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이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쓴 '나이 드는 것의 미덕'과 달리 나이 먹는 것의 또 다른 즐거움을 던져주고 있다. 280쪽. 1만 원.

김중기기자 filmton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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