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기초 질서

사사로운 人情(인정)과 원칙 사이에서 흔들릴 때가 많다. 머리는 원칙을 좇고있는데 가슴은 이미 私的(사적) 감정의 강물에 빠져있는 경우를 흔히 경험한다.

나와 가까운 한 知人(지인)의 경우, 최근 친구로부터 "당신과 도저히 친구 할 수 없다"는 폭탄선언을 받았다. 이유인즉, 얼마 전 친구가 제3자와 폭력 사건에 휘말려 경찰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현장 목격자인 이 사람은 사실대로 양심껏 진술을 했는데 이것이 그 친구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 그 친구 왈 "자네와 나는 친구 사이인데 친구인 나에게 왜 좀더 유리하게 진술해주지 않았느냐"며 "그런 의리(?) 없는 당신과는 도저히 친구 할 수 없다"며 대단히 섭섭해하더라는 것.

"아무리 친구지만 거짓 증언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며 그 친구와 소원해졌지만 친구에게 유리하도록 거짓말하는 것이 진정 우리네 우정의 참모습인지 모르겠다며 고민하는 모습에서 公(공)과 私(사)의 경계선, 그 어려움을 다시 한번 떠올린다.

이런 문제는 情(정)이 많은 한국인을 종종 당혹스럽게 한다. 그러나 이와 같은 문제는 답이 명확하다. 우정으로 인해 진실을 가릴 수는 없는 법, 문제는 우리네 현실이 그렇지 못하다는 점. 원칙대로 하면 매정하다고 한다. 아니 원칙과 질서를 무시하고 情誼(정의)에 기울면 '인간적'이라며 오히려 점수를 후하게 쳐주는 경우도 많다. 한국에서 기초 질서 바로 세우기가 어려운 이유 중 하나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기초 질서 준수'를 신년 메시지로 내놓았다. 당연한 메시지다. 우리는 지난 정권에서 질서와 원칙에 어긋나는 고위층의 행태를 많이 보아왔다. 위에서부터 지켜지지 않는 질서가 제대로 서 있을 리 없다.

정치경제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 '신뢰'를 강조했다. 신뢰가 없는 천박한 문화적 토양으로는 선진화가 어렵다는 얘기다. 물론 우리는 아직도 성장에 배고프다. 이 당선인이 장담하듯 7% 성장이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자본을 갉아 먹어가면서 까지 물질적 성장만을 고집한다면 차라리 성장을 포기하는 것이 낫다.

기초 질서는 상호 신뢰 속에서 싹튼다. 이번에는 기초 질서가 완전 뿌리내리길 기대해본다. '신뢰 사회'의 지름길이다.

윤주태 중부본부장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