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성형외과 의사가 있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3년 전. 당시 그는 보건소에서 공중보건의사로 일하고 있었다. 일면식도 없는 내게 전국공중보건의협회 행사에 강의를 요청한 것이 인연이 됐다. 기자의 얘기를 들어보려는 독특한 생각, 사근사근한 성격, 환자에게 쏟는 애정, 의사란 자긍심과 함께 갖고 있는 소명의식 등 의사들 가운데 그는 좀 특별했다. 공보의를 마치고 종합병원 성형외과 과장을 하고 있는 그는 고민이 참 많다. 개원에 대한 유혹도 그렇지만, 더 무거운 고민은 '환자와 어떻게 이야기를 할 것인가?'이다. 솔직하게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는 자세에 기자는 자동으로 '돌팔이 카운슬러'가 돼 버린다. 일단 이야기를 마음으로 들어주고 밥 몇 술 더 떠먹은 인생선배로서 주제넘게 조언을 했다. '환자가 가족이라고 생각하고 진심으로 진료를 할 것', '병원의 언어가 아닌 사회의 언어, 전문용어가 아닌 쉬운 말로 설명하고 설득할 것', '환자가 진료실에 들어올 때 먼저 눈을 맞추고 가벼운 인사말을 건넬 것' 등등.
조언을 한답시고 만날 때마다 같은 말을 하는 것은 영 성의없어 보인다. 그래서 꺼낸 화두가 '의사와 환자 사이의 커뮤니케이션'(communication·소통). 치료는 의사와 환자의 신뢰에서 시작된다. 성공적인 치료의 열쇠도 여기서 비롯된다. 의사들이 자주 쓰는 말 가운데 '라포'(rapport·마음이 서로 통함)란 게 있다. 의사는 환자와 라포가 잘 형성돼야 진료를 제대로 할 수 있다고 한다. 이 '라포 형성'의 필요조건이 커뮤니케이션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그에게 미국의 의과대 커리큘럼에는 '의료 커뮤니케이션' 과정이 있다는 점과 국내 의과대에서도 이런 과정이 생기고 있고 학회까지 결성됐다는 등의 이야기를 했다. 그리고 며칠 뒤 미국 의사들이 쓴 커뮤니케이션 책을 구해 선물했다. 앞으로도 좋은 의사가 되어 주길 바라는 마음과 함께.
'3분 진료'가 현실인 국내에서 의사와 환자의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운운하는 것이 물정 모르는 이야기일 수 있다. 환자 한 명을 20~30분 동안 진료를 하고서도 수익이 보장되는 미국의 현실을 부러워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하지만 '커뮤니케이션은 치료의 시작'이라는 명제에 대해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의사가 환자의 요구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환자에게 말할 기회를 많이 주는 의사에 대해 환자만족도가 높다는 연구결과들이 많다. 또 의사소통이 잘 될수록 진단의 정확성이 높고, 의료분쟁도 줄어든다. 또 환자가 치료과정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돼 치료율이 높아진다는 주장도 있다.
대구 수성구에서 안과의원을 하고 있는 C원장. 그는 세부전공이 소아안과여서 꼬마환자들이 많다. 첫 진료를 하고 나면 부모들에게 간단한 설명과 함께 아이들의 근시를 예방하거나 진행을 억제할 수 있는 생활지침이 빼곡히 적힌 '가정통신문'을 나눠 준다. 짧은 진료시간 동안 환자에게 좀 더 많은 것을 전달하려는 의사의 노력이다.
중구에서 내과의원을 운영 중인 Y원장은 환자들 사이에 입소문이 난 의사다. 비결은 진솔한 대화이다. 그는 "당뇨병 같은 성인병은 생활습관과 밀접합니다. 그래서 짧은 시간이지만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게 되고, 심지어 부부간의 문제까지 상담할 때가 있습니다."
진료하면서 컴퓨터 모니터만 뚫어져라 쳐다보는 의사, 그런 의사를 불만이 가득한 얼굴로 바로보는 환자. 이들에겐 '대화가 필요해!'.
김교영 사회1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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