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장옥관의 시와 함께] 시인의 모자/임영조

나의 새해 소망은

진짜 '시인'이 되는 것이다

해마다 별러도 쓰기 어려운

모자 하나 선물 받는 일이다

'시인'이란 대저,

한평생 제 영혼을 헹구는 사람

그 노래 멀리서 누군가 읽고

너무 반가워 가슴 벅찬 올실로

손수 짜서 씌워주는 모자 같은 것

돈 주고도 못 사고 공짜도 없는

그 무슨 백을 써도 구할 수 없는

얼핏 보면 값싼 듯 화사한 모자

쓰고 나면 왠지 궁상맞고 멋쩍은

그러면서 따뜻한 모자 같은 것

어디서나 팔지 않는 귀한 수제품

아무나 주지 않는 꽃다발 같은

'시인'이란 작위를 받아보고 싶다

어쩌면 사후에도 쓸똥말똥한

시인의 모자 하나 써보고 싶다

나의 새해 소망은.

시인의 호는 耳笑(이소), 곧 귀로 웃는 사람이다. 시인의 스승인 미당 선생이 작명하였다 한다. '귀가 잘 생겼다.'란 말과 '귀가 웃는다.'라는 말의 차이. 역시 '부족 방언의 마술사'다운 수사법이다. 귀가 잘 생긴 이소당은 그러나 가는귀가 먹어서 늘 말을 눈으로 들었다. 귀가 웃고 눈으로 말을 듣는 이. 이런 사람이 시인이 아닌가.

독자보다 시인이 더 많다는 이 나라에서 그러나 시인이라는 관사는 너무 무거운 모자. 利子(이자)와 資本(자본)이 꽃으로 운위되는 이 시대에 진짜 '시인'이 된다는 건 너무 큰 소망이 아닌가. 그럼에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시인의 새해 소망. "가장 좋은 시, 가장 훌륭한 시를 쓴 시인으로 남기보다 진짜 좋은 시 한 편 얻기 위해 평생을 노심초사한 시인으로 기억되기를" 꿈꿨던 시인. 무자년 새벽, 나도 찬물에 내 탁한 영혼을 헹구고 싶다.

장옥관(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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