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새정부, 교육이 바뀐다] ②다양화로 승부한다-고교교육

정인표 대구 계성고 교장은 요즘 곳곳에서 걸려오는 전화를 받느라 바쁘다. 지난 2일 매일신문에 자율형 사립고 전환을 준비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간 이후 동문과 학부모들의 기대에 찬 전화는 물론 자립형 사립고 운영 형태나 전환 준비 방법 등에 대한 사립고 관계자들의 문의도 끊이지 않는다. 정 교장은 "중학생 학부모들의 진학 열기가 높은 만큼 전환 요건이나 학생 선발 방법 등에 대해 새 정부가 세밀하게 준비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교육 분야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고교 다양화 방안은 벌써부터 교육 현장에 변화를 불러일으킬 만큼 파장이 크다. 고교 평준화의 문제점을 보완해 공교육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란 장밋빛 전망도 있지만 귀족학교 양산, 고교 입시 과열 등 교육을 더욱 왜곡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어떤 형태인가

이명박 당선자의 선거 공약과 대통령직인수위의 발표 등을 종합하면 고교 다양화의 기본 골격이 그려진다. 여기에 인가권을 갖게 되는 시·도 교육청들이 자체적인 운영 방안도 내놓고 있어 예상보다 빠르게 추진될 가능성도 있다.

인수위는 '새 정부 공교육 강화 방안의 핵심은 고교 다양화'라고 초기부터 강조해왔다. 골자는 전국에 150개의 기숙형 공립고와 100개의 자율형 사립고, 50개의 마이스터고를 만들어 사교육 수요를 공교육 단위에서 흡수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 기숙형 공립고는 대도시의 취약 지역이나 시·군을 중심으로 설립하고, 마이스터고는 기존 전문계고보다 한 발 더 나아가 취업과 진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겠다는 계획이다.

자율형 사립고는 고교 다양화의 성패를 판가름할 부분. 인수위는 학교 경영과 재정 운용, 교육과정 편성 등에 대한 권한은 기존의 자립형 사립고처럼 보장하되 재단 전입금을 5~10%(자립형은 20%)로 낮춰 진입이 쉽도록 한다는 방침. 정부가 수업료의 30% 정도를 지원해 저소득층 자녀들의 수업료와 생활비를 감면해주면 학교 운영에도 도움이 되고 귀족학교 논란도 불식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학생 선발은 자칫하면 입시 과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지역별로 설립을 안배하고 선지원 후추첨, 학교장 추천 등을 통해 사교육 수요를 억누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공교육 정상화냐 사교육 팽창이냐

고교 다양화와 관련해 갈수록 뜨거워지고 있는 논란의 핵심은 자율형 사립고. 서열화와 계층화를 부추겨 교육 양극화를 심화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비판이 조금도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인수위 역시 이를 감안한 듯 저소득층 자녀들도 새로운 형태의 고교들에 진학해 다닐 수 있도록 학생 선발과 장학 제도 등에 신경을 쓰고 있다. 우선 자율형 사립고는 특별전형을 통해 저소득층과 소외계층 자녀들이 진학할 수 있도록 하고, 입학생의 30%까지 장학 지원을 할 계획. 기숙형 공립고와 마이스터고는 학생의 70%에게 기숙사비, 학습 부대경비 등을 지원한다는 계획이다.

이들 고교의 운영은 내실이 한층 커져 사교육 수요를 대폭 떨어뜨릴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자율형 사립고를 준비하고 있다는 한 고교 관계자는 "자율형이 되면 학생 수가 줄어들고 교사들의 질이 높아져 수업 만족도가 커질 수밖에 없다."며 "방과후나 야간에도 자유선택형으로 보충수업을 진행하면 사교육비 부담도 거의 사라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일반고의 3배까지 받을 수 있는 납입금에 보충수업비, 기숙사비, 과외활동비 등을 포함하면 학생 1인당 교육비가 연간 1천만 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돼 가계 부담을 덜기 어렵다는 예측도 나온다. 오히려 자율형 사립고 진학을 위해 초·중학교 단계의 사교육 열기가 과열됨에 따라 전체 사교육비는 늘어날 수도 있다. 일부 시민단체에서는 초·중·고교 학력 공개와 맞물려 서열화를 심화시키는 한편 대학입시에서 고교등급제를 불가피하게 만들어 고교평준화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현장은 벌써 변화 중

전국 시·도 교육청들은 자율형 사립고 설립이 고교 경쟁력 강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 아래 벌써 구체적인 검토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진다. 서울의 경우 재단 전입금을 5%까지 낮춰 25개 자치구별로 1개씩 자율형 사립고를 설립, 2010학년도부터 도입되는 고교 선택권 확대에 맞출 계획이다. 학생 선발은 선지원 후추첨 방식으로 무시험이 될 전망. 경기도, 울산시 등 특목고 설립을 추진하던 지역에서도 자율형 사립고 설립으로 눈을 돌리며 세부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구·경북지역 역시 자율형 사립고와 관련된 물밑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특히 학력 상위권 고교들이 밀집한 수성구 고교들은 지역별 안배로 수성구에 2, 3개만 설립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정보 수집과 전환 준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수성구 한 고교 관계자는 "자율형 사립고로 전환하지 못하면 2류로 전락할 수 있다는 걱정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자립형 사립고 운영 현황과 전환에 필요한 요건 등을 조사하는 한편 인수위와 교육청 움직임, 언론 보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이종운 강동고 교감은 "자율형 사립고를 지역별로 안배하고 취약지역에 기숙형 공립고를 설립하면 지금처럼 특정 지역의 고교가 강세를 보이는 현상은 크게 줄어들 것"이라며 "고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고에 대한 관심도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재경기자 kjk@msnet.co.kr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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