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어느 건물의 화장실에 설치된 비데를 뜯어 달아났다가 잡혔다. 사연인즉 심한 치질을 앓고 있지만 경제적 어려움으로 비데를 살 형편이 못 되던 차 우연히 예전 근무했던 건물의 화장실에 들렀다가 見物生心(견물생심)을 이기지 못했던 것. 훔친 비데를 돌려주었고, 딱한 사정도 참작돼 기소유예 처분을 받긴 했으나 지난 연말 대검찰청의 '2007 황당사건 베스트 17' 가운데 하나로 선정된 사건이다.
하지만 이 정도는 최근 창궐하는 '치사한 도둑들'에 비하면 애교스러울 판이다. 태안 원유 유출사고 피해 어민들을 두 번 울리는 파렴치 도둑들이 설치고 있다 한다. 전남 무안의 한 마을 경우 주민들이 해안의 타르 덩어리를 제거하기 위해 집을 비운 새 빈집털이범들이 현금과 패물 등을 싸그리 털어 달아났다. 그야말로 '벼룩의 간까지 빼먹는'도둑들이다. 경찰이 국가적 재난을 틈탄 파렴치 범죄로 규정, 엄벌에 처하겠다며 범인 검거에 나섰지만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한 어민들은 얼마나 분하고 서러울까.
뿐만 아니다. 초등학교 급식소에 있던 스테인리스 식판과 수저 각각 1천450개씩이 몽땅 사라진 사건이 며칠 전 울산에서 벌어졌다. 고철 가격 폭등으로 일부 학교의 스테인리스 재질 교문이 사라진 데 이은 또 하나의 엽기 도난 시리즈다.
도둑에도 여러 스타일이 있다. 막다른 길에서 고민 끝에 일시적으로 양심에 눈감은 생계형 도둑도 있을 것이고, 아예 도둑질이 일상이 돼버린 직업적 도둑도 있을 것이다. 가난한 집은 절대 안 터는 동정심 많은(?) 도둑도 있을 테고, 알량한 양심마저 저당 잡히고 이것저것 안 가리는 도둑도 있을 터이다. 절대로 사람은 안 다치게 하는 것을 철칙으로 하는 도둑도 있을 것이고 여차하면 눈에 뵈는 것 없는 막가파식 도둑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세상에서 가장 몰염치한 도둑은 농민들이 한 해 내내, 심지어 수년씩 땀 흘려 지은 수확물을 깡그리 훔쳐가는 도둑들일 것이다. 쌓아둔 볏가마니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나 하면 배추값이 금값일 땐 밤 사이 밭이 텅 비어버리고, 6년근 인삼밭이 송두리째 파헤쳐지는 사건들도 있었다. 무안 어촌을 휩쓴 도난사건과 울산 초교의 식기 도난사건은 다시금 우리 사회의 양심마비 증후군을 보여주는 우울한 자화상이다.
전경옥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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