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영옥 첫 시집 '사라진 입들' 펴내

'늦게 만나면 후회할 여류시인'

'잠실 방문을 열면 누에들의 뽕잎 갉아 먹는 소리가 소나기처럼 쏟아졌다/어두컴컴한 방안을 마구 두드리던 비,/눈 뜨지 못한 애벌레들은 언니가 썰어주는 뽕잎을 타고 너울너울 잠들었다가/세찬 빗소리를 몰고 일어났다/내 마음은 누가 갉아 먹었는지 바람이 숭숭 들고 있었다/…'('사라진 잎들' 중에서)

1960년 경주에서 태어난 시인 이영옥 씨가 첫 시집 '사라진 입들'(천년의시작 펴냄)을 내놓았다.

그의 시에는 고추잠자리의 망사날개처럼 촘촘한 기억의 얼개들이 있다. 고치를 팔아 등록금으로 쓴 나는 눈부신 비단이 될 수 없는데, 오물거리며 언니의 희망을 풀어내던 누에의 그 작은 입들은 어디로 갔을까.

오래된 자전거가 오히려 삐거덕거리는 아버지를 부축해 오고('바람 아래 붉은 강'), 폐병을 감추고 간 시집에서 석 달 만에 쫓겨 왔다던 옆집 언니('우물 속의 잠자리'), 월남에서 돌아온 외팔이 삼촌('맨드라미')··· . 분홍색 망사 커튼을 들추고 내밀한 가족사의 이미지들을 엮어내고 있다.

시집 곳곳에서 묻어나는 희미한 옛 기억의 상처와 꽃들과 벌레 등 모든 생명체의 슬픈 운명을 얽어 늑골 깊숙이 박힌 이미지를 건져 올리고 있다.

시인 황동규는 추천사에서 "이런 시들을 읽다보면 독자의 추억도 환해진다. 그 환함 속에 가족과 주변의 삶들이 모질만큼 감성적으로 새겨진다. 늦게 만나면 후회하게 될지도 모르는 시인이다."고 적고 있다.

이 시인은 2004년 '시작'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2005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등단했다. 131쪽. 7천 원.

김중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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