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톡톡 아이디어 하나가 똑똑한 세상 만든다

"천재(天才) 한 명이 1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다. 핵심 인재나 고급 두뇌가 세상을 크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최근 들어 "아이디어(Idea) 하나가 세상을 바꾼다."는 말도 부쩍 각광받고 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내놓은 공익(公益) 아이디어를 통해 '누구나 겪지만 지나쳤던' 문제 혹은 불합리한 현장들이 속속 개선되거나 사회 발전에 이바지하는 등 이른바 '생활 속 아이디어로 이룬 시민혁명'이 조용히 불붙고 있다.

서울에서 택시기사로 일하는 김형권(60) 씨는 '아이디어 왕(王)'이다. 지난 한 해 그가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에 제출한 아이디어는 무려 74건. 김 씨의 아이디어를 보면 돈을 벌려는 다른 아이디어들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1천 원, 5천 원, 1만 원권 등 새로 나온 지폐의 시각장애인을 위한 인식용 점자가 종전 지폐보다 작아지고, 위치도 판별하기 어려워 개선이 필요하다는 게 그가 제출한 아이디어 가운데 하나다. 또 고속국도 통행료를 신용카드로 결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도 내놓았다. 김 씨는 "택시를 몰며 많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아이디어를 얻는다."며 "저의 작은 아이디어가 우리 사회를 더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고 털어놨다.

박원순 변호사 등이 앞장서 2006년 3월 만든 희망제작소 사회창안센터에는 김 씨처럼 '세상을 좀 더 낫게 바꿔보려는' 시민들의 아이디어가 줄을 잇고 있다. 사회창안센터는 시민들의 아이디어와 공익적 제안을 모아 현실화하기 위해 설립됐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들이 '결실'을 거두는 경우도 속속 늘어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지하철의 낮는 손잡이 도입. 아직도 '높낮이가 똑같은' 대구 지하철과 달리 서울 지하철에는 지난해부터 높낮이가 다른 손잡이들이 만들어졌다. 종전 손잡이는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만들어져 키 작은 성인이나 어린이, 노약자들이 이용하기 불편했다. 이웃 나라인 일본은 오래전부터 높낮이가 다른 지하철 손잡이를 선보였다.

생리기간에는 현실적으로 수영장을 이용하지 못하는 여성들을 배려, 이용료를 할인해주거나 수영장을 이용하지 못하는 시기엔 다른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자는 아이디어도 실현됐다. 서울 송파구, 양천구 등이 여성에게 수영장 이용료 5% 할인 또는 생리기간 중 다른 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울산 동구는 관련 조례를 제정하기도 했다.

빵과 같은 제품의 유통기한 표시를 크게 키우고 기준을 통일, 어떤 제품이든 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개선하자는 아이디어도 한 시민에 의해 제안돼 실현을 목전에 두고 있다.

고객들이 은행에서 ATM(자동화기기)을 이용할 때 수수료를 사전에 공지하는 시스템도 사회창안센터에 의해 조만간 보급될 예정. 자동화기기를 이용할 때마다 사전에 수수료 발생을 고지해주지 않는 바람에 돈을 인출하고 난 뒤에서야 수수료를 확인할 수밖에 없다는 한 시민의 아이디어에 따라 개선 방안이 마련됐다. 시민들이 낸 아이디어가 의미 있는 정책으로 변화되었을 때엔 아이디어 제공자를 포함, 기여한 사람들의 명단이 정책 문안에 등록되고 있다.

사회창안센터 이경희(30) 연구원은 "지하철의 낮은 손잡이 도입이 실현된 아이디어 중 가장 기억에 남는다."며 "평범한 시민들의 아이디어가 연구원들의 기초조사 및 전문가 평가 등을 거쳐 현실화되는 것을 보면 가슴이 뿌뜻하다."고 귀띔했다.

이대현기자 sky@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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