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 놀이터의 철조망

식당 경영으로 성공한 고향 분이 있습니다. 팔공산 가는 길의 초입에 있는 그의 식당은 초라해 볼품은 없지만 항상 손님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고기 맛이 좋다는 입소문이 나면서 주말이면 자리 차지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습니다.

예순이 넘은 사장만으로 운영하기가 버거웠던지 나중에는 아들 부부를 불러 동업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한동안 父子(부자) 가족이 함께 어울려 부지런히 꾸려가는 모습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아들 내외가 보이지 않아 수소문해 보았더니 아버지와 견해 차이로 그곳을 떠나버렸다는 이야깁니다.

돈을 웬만큼 모았으니 식당을 현대식으로 크게 지어 새롭게 출발하자는 아들의 주장과 지금의 분위기가 아니면 곤란하다는 아버지의 주장 사이에서 심한 갈등을 빚었다는 소문을 듣고 용도에 어울리는 환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파트의 어린이 놀이터에 어느 날부터 희한한 철망이 둘러쳐지고 있었습니다. 잘 가꾸어진 측백나무 울타리의 상당 부분을 뽑아내면서까지 철망을 두르고 쇠파이프 문을 덩그렇게 세우는 게 여간 어색하지가 않았습니다.

인근의 경비원에게 물어봐도 명확한 이유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간혹 놀이터 한편의 의자에 앉아 떠들어대는 청소년 문제로 주민의 불평이 있다는 소문은 이미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 이유만으로 이런 거창한 방벽을 칠 줄은 몰랐습니다.

어린이 놀이터라고 하지만 그곳에는 줄기가 무성한 등나무 아래 앉을 자리들이 마련되어 있어 청소년은 물론 어른들도 편히 쉴 수 있는 주민 모두의 소중한 휴식 공간입니다. 특히 놀이터 바로 옆 관리사무소 2층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머리를 식히러 나오는 학생들에게는 둘도 없는 쉼터이기도 합니다.

밤 동안 떠들거나 애정 표현이 지나친 젊은이가 있다면 경비원들이 잘 타일러 다른 곳으로 보내면 될 일을 전혀 딴 방향에서 해결책을 찾는 듯해 아쉬움이 일었습니다. 경비원들이 조금만 신경을 써도 능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을 너무 편의 위주로 접근하는 듯해 이후 추이를 더욱 관심 갖고 지켜보았습니다.

저녁 5시쯤만 되면 어김없이 파이프 대문이 자물쇠로 채워지고 놀이터는 이내 적막으로 변해버립니다. 이젠 더 이상 즐겁게 뛰어노는 어린이도, 휴식을 취하기 위해 나오는 주민도, 떠드는 청소년도 보이지 않는 황량한 벌판만을 연상케 할 뿐입니다.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을 구조물에 맡기게 되자 경비원들은 성가신 과제가 사라졌다고 쾌재를 외칠지 몰라도 놀이터 본래의 기능은 점점 상실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일부 소란 피우는 청소년이 문제가 된다면 그 부분을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지 다수가 향유하는 고유 권리까지 빼앗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다 할 수 없습니다.

더 놀고 싶은 어린이나 쉬고 싶은 청소년, 그리고 모처럼 찾는 어른들의 권리는 보다 앞서 존중되어 마땅합니다. 아이들을 보살핀답시고 제시간에 맞춰 항상 경찰관이 지켜서 있다면 결과는 어떻게 되겠습니까. 아이들을 보호해 준다는 당초의 고마움은 점점 사라지고 놀이터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어색한 분위기에 아이들은 차츰 떠나고 말지도 모릅니다.

돌 몇 개가 나온다고 해서 아까운 쌀자루를 통째로 내다버리는 무모한 어른들은 아마 없을 겁니다. 철새 도래지를 보호하기 위해 망루를 높이 세울수록 급작스레 바뀐 환경에 놀라 철새가 잘 오지 않는 것처럼 근본 원인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파악해야 옳은 해결책이 나오는 법입니다.

환경이나 분위기에 알맞은 대책을 세우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자주 경험하게 됩니다. 나무는 보았으되 숲을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는 일이 너무도 많습니다. 선량한 다수를 보호하는 일이 우선되어야지 몇몇 청소년 때문에 놀이터 본래의 기능까지 앗아버리는 이 같은 어리석음이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성병조(수필가·대구수필가협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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