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사설韓銀 독립성 지켜져야 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통화정책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금융통화위원회를 한국은행에서 떼내는 방안을 검토하는 모양이다. 금통위가 별도 사무국이 없어 한은 집행부의 영향을 지나치게 많이 받고 있다는 게 표면적 이유다. 하지만 통화정책을 한은이 아닌 정부가 직접 장악하겠다는 게 속셈이다. 官治(관치) 금융시대로 돌아가겠다는 어처구니없는 발상이다.

인수위는 최근 부동산 값 안정에 한은이 나설 것을 주문하는 등 통화정책 개입 발언으로 한은의 입지를 좁혔다. 또 강만수 인수위 경제1분과 간사는 "한국은행은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주장하지만 책임을 지지 않는 구조"라고 비판했다. 강 간사는 과거 재경부 재직 시절 한국은행법 개정을 놓고 한은과 심각한 마찰을 빚은 전력이 있다. 차기정부 출범 후 한은이 다시 '재경부 남대문 출장소'로 전락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제기된 배경이다.

인수위가 한은을 몰아붙이는 이유는 하나다. 차기정부의 경기부양책에 적극 협조하라는 메시지다. 인위적인 경기 부양책을 동원하면 차기정부의 공약인 성장률 7% 달성은 어렵지 않다. 관건은 물가다. 물가 앙등을 방치하면 모를까, 물가 안정과 함께 성장률을 끌어올리는 건 쉽지 않다. 차기정부는 공약인 7% 성장률 달성이 최우선인 반면 한은은 물가 안정이 우선이라는 입장이다. 차기 정부와 한은의 목표와 이해가 충돌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성태 한은 총재는 그러나 "부동산 값은 직접적인 정책목표가 아니다"며 인수위의 주문을 거부했다. 물가 안정이라는 본연의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또 "중장기적으로 성장률을 높이려면 경제가 안정돼야 한다. 한은의 독립성을 지켜주는 게 새 정부의 목표 달성에 도움이 된다"며 인수위의 '불온한 압박'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논란이 일자, 인수위는 한은과 금통위 분리 검토가 이번 정부조직 개편 때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며 한 발 물러섰다. 그러나 한은이 성장목표 달성에 걸림돌이 될 경우 방관하지는 않을 게다. 금통위에 별도 사무국을 둬 독립시키든지, 어떤 식으로든 한은을 물가와 통화정책에서 배제하려고 시도할 것이다. 이는 '통화정책 시계'를 외환위기 이전 시대로 돌리는 것이다. 성장은 중요하다. 하지만 물가 안정 없는 성장은 사상누각임을 차기정부는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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