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공간, 예술을 탐하다] ③상임지휘자 이재준의 '손끝'

맑고 고운 '생명의 소리' 관객과 함께

지휘자의 창조 공간은 손끝에서 시작된다. 대부분의 오케스트라 지휘자들과는 달리, 합창 지휘자는 '손끝'의 움직임이 사실상 전부나 다름없다. 이들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면 거의 지휘봉을 잡지 않는다. 단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노래로 이끌어 낸 뒤 관객들의 마음속으로 전달하는 것이 합창 지휘자의 중요한 역할이기 때문이다.

오케스트라 지휘에서 정확한 '템포'와 '비트'가 핵심이라면, 합창 지휘에서는 '터치'가 생명이다. 불과 20여 년 전만 하더라도 합창 지휘자들에겐 성냥곽만한 공간만 허용했었다. 엄격한 형식주의와 지휘자의 권위를 강조하던 시대적 산물이랄까. 그러나 요즘에는 두 팔을 다 벌린 크기의 공간까지 허락하는 분위기다. 그만큼 지휘자의 자유공간이 커진 셈이다.

비록 손끝이라는 작은 곳에서 출발하지만, 그의 공간은 무대와 객석, 그리고 관객의 마음으로 끝없이 확대된다. 그 속에는 예술적 감동이 흐른다.

깜깜한 무대. 고요와 적막을 뚫고 일순 드리워진 밝은 빛을 따라 지휘자의 가슴에는 별처럼 반짝이는 해맑은 미소들이 쏟아져 들어온다. 순수하고 맑고 깨끗해서 편견과 선입견의 여지가 없는…. 그 미소들은 지휘자의 손끝 표정에 모든 것을 맡긴다. 매 공연 때마다 겪는 이 순수 영혼과의 첫 만남은 소년소녀합창단 지휘자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자 감동이다.

"노란색 물감의 붓으로 지휘하면 노란색으로 바뀌고, 연녹색으로 지휘하면 무대는 연녹색 공간이 됩니다. 성인 합창단에선 경험하기 어려운, 영혼이 맑은 소년소녀합창단에서만 느낄 수 있는 축복입니다."

지휘자와 맑은 영혼의 단원들이 창조해 낸 무대는 생명의 공간이기도 하다. 생명에는 호흡이 따르고, 호흡으로 연결된 음악은 지휘자의 손끝을 따라 영혼을 '터치'하는 감동으로 이어진다. 그 손끝은 '터치' 육안이 아니라, 마음의 눈이다.

수년 전 대구시립소년소녀합창단에서 시각장애우 단원을 선발했을 때, "앞을 못 보는데, 어떻게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노래를 부를 수 있나?"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그때 시각장애인 소년은 "지휘자 선생님의 움직임을 귀와 마음으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라고 말했다.

이 소년이 연주회에 출연, '나의 눈 열어주소서'를 열창하자 관객들은 감동의 눈물을 흘렸다. 손끝에서 출발한 지휘자의 공간이 무대와 객석을 넘어 관객의 마음에까지 일파만파 펼쳐진 순간이었다. "소년소녀합창단의 경우 특히 지휘자와 단원들 간 영혼과 마음의 교류가 중요합니다." 이재준(50) 상임지휘자의 두 손은 결국 영혼의 소리를 이끌어 내는 또 하나의 작은 우주 공간인 것이다.

석민기자 sukmin@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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