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논술자율화 어떻게 대비할까

통합논술 벗어나 어려워질 것…미국식 에세이 쓰기 훈련 도움

박병욱 경북외국어고 교사가 학생들과 온라인 논술 첨삭자료를 활용해 수업을 하고 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박병욱 경북외국어고 교사가 학생들과 온라인 논술 첨삭자료를 활용해 수업을 하고 있다. 정우용기자 vin@msnet.co.kr

지난 9일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전국대학입학처장협의회 소속 18개 대학 입학처장들은 논술을 포함한 대입 자율화 방안을 논의했다. 이날 논의의 골자는 논술고사 자율화. 2005년 이후 지속돼온 '논술고사 가이드라인'의 폐지방침을 놓고 일부에서 불거진 본고사 부활 논란이 도마에 올랐다. 이날 회의는 "본고사 부활이 아니다."는 인수위 견해에도 불구하고, 논술의 형태가 현재까지와는 상당히 달라질 것이라는 예견을 하기에 충분했다. 같은 날 고려대, 서강대, 한양대가 "2009학년도 입시부터 논술가이드라인을 따르지 않고 문제를 자유롭게 내겠다."고 선언하면서 논란은 한층 커졌다. 목전에 다가온 대입 자율화 시대. 논술은 어떤 형태로 변할까, 또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경북교육청 논술 교실(kben.org)'에서 수년째 학생들에게 온라인 첨삭 강의를 하고 있는 류성연(경북과학고), 박병욱(경북외국어고), 권정안(서라벌여중), 채문곤(경북외고), 김광수(고령중) 교사를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대입자율화 시대, 논술시험 어떻게 변할까

일단 논술 가이드라인이 폐지되면 그동안 금지됐던 외국어 제시문을 내거나 수학·과학 관련 풀이과정을 묻는 문제가 출제될 가능성이 크다. 표준점수를 제공하는 등 수능 등급제가 보완되면서 논술을 요구하는 대학들도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 박병욱 교사는 "논술 가이드라인이 폐지되면 대학별 고사를 치는 학교가 일부 상위권 대학으로 줄어들 것"이라며 "논술도 지금처럼 학생들에게 큰 부담을 주는 형태는 아닐 것으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출제자도 학생도 모두에게 모호한 통합논술의 부담을 벗어나게 된다는 의미지만 논술 시험 자체는 어려워질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대학들이 "논술로 지원자들의 국어·영어·수학 실력을 측정하겠다."고 나설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동일한 계열 내에서도 모집단위에 따라 논술의 형태로 영어와 수학 지식을 물을 수 있다는 뜻이다.

논술의 형태도 '쓰는 논술' 위주에서 더 다양해질 수 있다. 류성연 교사는 포스텍과 카이스트식 논술을 예로 들었다. "지원자들에게 현안문제(논제)를 주고 집단토의를 시킵니다. 지식과 생각을 토대로 해결책을 제시하도록 요구하는 것이죠. 채점교수는 토의 장면을 녹화해 지원자에게 수학 능력이 있는지 측정할 수 있습니다. 쓰는 논술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겁니다. 이런 식의 논술이 여러 대학에 더 보급되지 않을까요."

채문곤 교사는 "논술 가이드라인이 폐지되면 논술학원들이 정리될 것 같다. 통합논술 하에서는 논술학원을 열기가 더 용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벌써부터 본고사 부활 논란이 일 정도로 논술 수준은 어려워지겠지만, 학교 안에서 논술하는 분위기가 더 정착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학교 선생님들이 말하는 논술

"자꾸 대입논술만 생각하니까 논술이 어렵다, 쉽다는 얘기가 나오는 거지요.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인 말과 글로 표현하는 훈련은 전 교육과정을 통해 요구되는 것입니다." 김광수 교사는 학교 논술이 현재보다 더 보편화되고 중요한 수업도구로 활용될 가능성이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식 에세이 쓰기가 그것이다.

그렇다면 논술을 잘하는 법이 따로 있을까. 박 교사는 "많은 글들을 첨삭했는데 '첨삭할 것 없음'이라고 게시판에 올린 글이 겨우 두세 편"이라고 말했다. 논제에 대한 해석이 정확하고 배경지식도 풍부한 글이었다. 배경지식이 부족하면 빈약한 글이 되고 논제를 잘못 해석하면 채점자 입장에서 읽어볼 필요도 없는 글이 된다. 창의성까지 더하면 금상첨화. 박 교사는 "결과에 대한 창의성이 아니라 사고의 창의성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이 세 가지가 보태져야 비로소 첨삭할 것 없는 답안"이라고 했다.

문제는 이런 실력이 하루아침에 갖춰지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배경지식을 키우는 훌륭한 도구는 단연 독서다. 여기에는 조건이 있다. 한 권을 읽더라도 수준에 맞는 책을 골라 읽고 요약해보는 습관이다. 선생님, 친구들과 독서토론을 해보는 것은 매우 유익하다. 내 생각을 정리하고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어볼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신문 사설 등을 통해 서로 반대되는 의견들을 비교해서 읽어보는 것은 큰 도움이 된다.

채 교사는 "우리나라 교육은 거꾸로 간다. 논술이 어렵다고들 하니까, 독서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심지어 일부 교육청에서는 독서 매뉴얼까지 만들어 보급했다. 독서에 매뉴얼을 둔다는 건 또 다른 틀"이라고 지적했다. 논술은 어릴 적부터의 다양한 독서와 풍부한 경험에서 발현되기 때문이라는 것. 권정안 교사는 "학습태도가 좋고 남들을 잘 배려할 줄 아는 학생이 논술도 잘한다."며 논술이 가진 전인교육성을 강조했다.

김광수 교사는 논술 자율화 이후 학교 수업의 변화가 더 가속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교과서를 읽는 교사 주도식 수업에서 학생들 스스로 생각을 말하고 글로 표현하는 수업 형태가 확산될 것이라고 했다. 김 교사는 "논술에 왕도는 없다."며 "논술을 잘하려면, 또 입시논술이라는 그간의 오명에서 벗어나려면 초등학교 때부터 교사 재교육 등을 통해 이런 수업형태가 보편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병고기자 cbg@msnet.co.kr

▶경북교육청 논술 교실은?

경북 사이버 논술 교실은 2001년 처음 문을 열었다. 논술이 교육이나 입시의 관심사로 등장하기 전의 일이다. 사이버 담임제로 운영 중인 경북 사이버 논술 교실에는 현직 교사 40명과 학생 350명이 등록돼 있다. 현직 교사들이 직접 제공하는 첨삭 논술은 타 지역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다. 게시판 열람이 가능한 자유 이용자까지 합하면 1일 평균 페이지뷰(문서 조회) 건수가 1만 회에 달한다. 김광수 교사는 "일단 접속하면 1인당 10~30건가량 자료를 열람하는 셈"이라고 말했다.

논술 첨삭 온라인 학습은 교사 1명당 7, 8명의 학생을 맡아 게시판을 통해 3주에 한 번씩 과제를 내고 e메일로 숙제를 받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첨삭 지도한 글은 그대로 게시판에 공개된다. 회원이 아닌 학생도 간접적인 지도를 받을 수 있다. 첨삭 글을 해당 학생에게만 제공하지 않고 게시판에 공개하는 것은 지도 교사들의 열성과 자신감 덕분이다. 현직 교사들로부터 직접 첨삭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 7년간 운영해오면서 쌓인 학생들의 글(원문)과 첨삭글 등 풍부한 논술 자료들이 또 다른 강점이다. 한 개 글에 보통 2, 3시간의 첨삭 시간이 소요되는데, 출제 의도-학생 원문-첨삭글의 형태로 A4 5~10장 분량으로 상세히 제공된다. 현재는 수학, 과학 등 자연계 논술에 대한 지도교사와 첨삭 강의를 보강 중에 있다. 경북 사이버 논술 교실에서 지난달부터 한 달째 진행 중인 자체 설문조사에서 응답 학생 480명 중 315명(65.6%)이 '아주 많이 도움이 된다.'고 응답했다.

◆매일신문 Hi Study는 이번 주부터 논술교실을 운영하는 교사들의 논술 지도 사례를 엄선해 싣는다. 논제와 제시문 분석, 학생들의 실제 글과 교사들의 첨삭지도에 이르기까지 어디에 내놓아도 모범이 될 만한 완결된 내용이다. 제시문과 문제, 보다 자세한 설명 등은 홈페이지(kben.org)에서 확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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