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040광장)대구를 '그랑부르크'로

유럽의 지명 중에는 '부르크'(burg·bourg)로 끝나는 도시들이 많이 있다. 언덕 혹은 성채를 의미하는 부르크는 라틴어의 부르구스(burgus)가 변형된 것이다. 잘 알려진 곳으로는 스트라스부르크, 함부르크, 잘츠부르크, 인스부르크 등이 있고 합스부르크왕가, 도시국가 룩셈부르크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신성로마제국시대(962-1806)에는 황제나 제후를 위한 전쟁지원과 조세의무를 면제받고 정치적으로 독립된 도시를 자유도시(freie stadte)라 불렀다. 17세기에 들어서자 신성로마황제의 권력이 약화되면서 자유도시들이 100여 개로 늘어났는데 수많은 '부르크'들도 자유도시의 일원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도시의 명칭을 보면 부르크들이 어떻게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한다. 사통팔달한 길에서 통행료를 받던 스트라스('길'을 의미)부르크, 항구를 기반으로 관세로 번영한 함(항구)부르크, 소금을 주산물로 하던 잘츠(소금)부르크, 산악지역의 숙소로 알려진 인스(여관)부르크 등이 좋은 예가 된다.

부르크는 명품도시들이었다. 교역에 충실하면서 경제적으로 부유해졌고 부를 가진 중산층이 늘어나면서 문화적으로도 풍성한 도시가 되었다. 모차르트가 잘츠부르크 출신인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중산층의 성장은 이웃마을의 부러움을 사서 부르크에 사는 사람을 좋은 의미에서 '부르주아'(bourgeois)라고 부르게 된다. 그들은 세상의 흐름에 발빠르게 대응해 부를 축적하는 면도 있었지만 교류와 개방에 따라 타인을 인정하는 관용정신도 가지고 있었다.

해마다 주요 언론들은 세계 주요도시를 대상으로 살기 좋은 도시를 선정하고 있다. 도시기반시설과 주거환경 등 하드 인프라뿐만 아니라 교육여건, 보건위생, 실업률과 범죄율, 지역 언론 등 서비스도 감안해 삶의 환경을 측정하고 있다. 여러 기관조사에 따르면 유럽의 주요도시, 즉 현대판 부르크들이 상위에 랭크되고 있다.

작년 말 한국언론인포럼에서 발표한 살기 좋은 도시 중에 유감스럽게도 대구는 빠져 있다. 1990년대 초까지만 해도 대구지역은 섬유산업을 비롯한 각종 산업과 사과·한약 등 특산물이 풍부해 명품도시의 요건을 갖추고 있었다. 교통의 중심지였고 교육·의료 등 서비스가 발달해 경북 내륙은 물론 경남지역의 인재까지도 모여들었던 대구였다.

근래 대구의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보도를 본 적이 있다. 대구사람들의 고향에 대한 자긍심은 타지에서 유달리 눈에 띄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대구를 살기 좋은 도시로 생각했기 때문일 터인데 대구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가장 먼저 경제력의 쇠퇴를 들 수 있다. 통계청에서 발표한 경제활동별 지역총생산을 살펴보면 1994년 전국의 3.91%를 차지하던 대구는 2006년 3.25%로 떨어지고 있다. 전국의 5%를 차지하는 인구를 감안하면 전국평균에도 못 미치는 것 아닌가.

대구의 경제활동별 구성에서 제조업은 같은 기간 26.2%에서 18.6%로 급감하고 있다. 반면 공공행정·국방이 5.9%에서 9.4%, 교육이 6.1%에서 7.8% 등이고 숙박·음식업도 조금 늘어났다. 군사시설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공공행정이 비대해졌고, 청년실업은 늘어나는데 교육부문의 소비증가가 이루어졌다.

대구를 명품도시로 거듭 나기 위해서는 첫째, 특화된 제조업부터 육성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시각으로 접근해 최근 세계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환경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온실가스 저감장치의 도입, 상·하수도 수질개선, 대기오염방지를 위한 기계설비를 생산하고 수출해야 한다.

둘째, 장인정신을 길러야 한다. 틈새사업으로 꼽히는 안경테 등 가내수공업형 산업은 디자인과 마무리 솜씨에 따라 얼마든지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 디테일까지 꼼꼼히 마무리하는 장인정신이 독일경제의 저력의 근간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셋째, '더불어 살기'에 대한 인식의 변화도 필요하다. 대구를 국제화하기 위해선 배타적 연고주의를 없애야 한다. 글로벌 경쟁시대에 언제까지 학연과 지연을 고집할 것인가. 지식경제자유도시의 성공을 위해서라도 단계적으로 국제적인 감각을 익혀나가야 한다. 대구(大邱)는 '큰 언덕'(大丘)에서 유래했다. 큰 언덕을 명품도시로 만들려면 대구를 '그랑부르크'(Grandburg)로 바꾸어야 한다는 시민들의 인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김영우(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연구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