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당선자, 당선인

조지 워싱턴이 미국 초대 대통령이 되었을 때 대통령을 어떻게 불러야 할지 문제가 됐다. 부통령이었던 존 애덤스 등 여러 사람들이 유럽의 왕에 대한 칭호와 같이 '전하'나 '폐하'로 부르거나, '자유 수호자 각하'와 같은 거창한 호칭을 붙이자고 했다. 이에 대해 워싱턴은 "평범한 사람인 대통령에게 그렇게 아첨하는 단어를 쓸 필요가 없다. 그냥 '미국의 대통령'으로 하자"고 제안했고 대통령을 부를 때도 '미스터 프레지던트(Mr President)'라고 해달라고 했다. 미국 대통령의 공식 호칭인 '미스터 프레지던트'는 이렇게 탄생했다.

'朕(짐)'은 황제가 본인을 지칭할 때 사용하는 호칭이지만, 원래는 일반 사람들도 쓰던 말이었다. 이것이 황제 전용으로 바뀐 것은 진시황이 중국을 통일한 뒤 황제만 쓸 수 있도록 강제하면서부터이다. 진시황 이전에 제후들이 자신을 가리킨 용어는 '本主(본주)' '孤(고)' '寡人(과인)' 등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 태조 때부터 이 호칭을 써왔으나 元(원)의 간섭이 심해진 충렬왕때부터 孤를 사용했다. 조선 때에는 寡人을 써오다 1897년 고종이 대한제국의 황제가 되면서부터 朕을 사용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요구에 따라 이명박 차기 대통령의 호칭이 '당선자'에서 '당선인'으로 바뀌었다. 인수위가 구체적인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있지만 '者(자)'의 훈이 사람을 낮잡아 이르거나 비하하는 뜻이 담긴 '놈'이라는 것 때문이 아니겠느냐는 것이 국민들의 추측이다. 그러나 원래 놈은 사람을 지칭하는 일반명사였다. 이는 최소한의 국어 상식이다. 오늘날 놈을 비하적 의미로 쓰고 있다고 해서 者의 의미도 같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다.

더구나 '당선자'는 헌법 68조 2항에 규정되어 있는 용어이다. 인수위의 생각대로라면 헌법에 '막말'이 들어가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형법의 犯人(범인)은 犯者(범자), 被害者(피해자)는 被害人(피해인)으로 바꿔야 하지 않겠는가. 판매자, 구매자, 과학자, 교육자, 기술자, 합격자, 기자는 또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당선자를 당선인으로 바꾼 인수위의 모습에서 凡夫(범부)도 쓸 수 있었던 朕을 황제 독점으로 바꾼 절대 권력자 진시황의 그림자가 읽혀진다고 하면 비약일까. '당선자'는 그저 '당선된 사람'일 뿐이다. 정경훈 정치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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