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속의 오늘] 독립운동가 박열 사망

항일 독립운동가 박열이 1974년 1월 17일 북한에서 사망했다. 그의 본명은 박준식. 1902년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나 경성고등보통학교에서 수학했다. 경성고보 재학 중에 3·1 운동 만세 시위에 가담한 혐의로 퇴학당하고, 1919년 일본 도쿄로 건너가 정칙영어학교에서 수학했다.

일본에서는 사회주의자, 무정부주의자들과 교류했고, 의혈단, 흑우회 등을 조직했다. 그는 흑도회라는 무정부주의자 단체에 가담한 아나키즘 신봉자였다.

1922년 비밀결사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하고, 다음해 일본인 애인이자 동지인 가네코 후미코(金子文子)와 함께 일왕 히로히토 암살을 실행하려다 체포돼 1926년 3월 사형선고를 받았다. 같은 해 4월 무기징역으로 감형됐다. 가네코는 그해 7월 옥중에서 자살했고, 박열은 1945년 해방 후 22년 2개월 만에 석방됐다. 이후 일본에서 우익 교포 단체인 재일조선인거류민단(재일본대한민국거류민단의 전신)을 조직하고 단장을 맡았다. 그는 이승만 노선을 지지했으며, 이승만의 초청으로 1949년 귀국했다가 6·25전쟁 때 납북됐다. 1974년 사망 당시에는 재북평화통일촉진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었다. 국내에서는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1991년 걸프전쟁 발발 ▶1998년 미국 클린턴 대통령 성희롱 사건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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