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대선 직후 한 여론조사가 성급하게도 '5년 후' 대권 주자를 물었다. 결과는 단연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였다. 이번에 떨어진 몇몇도 명함은 내밀었지만 족탈불급이었다. 현재로서는 박 전 대표 이상 가는 인물이 국민 머릿속에 없는 것이다. 정치적 자산 측면에서도 그만큼 대중성과 정당기반을 갖춘 경우가 드물다. 여야 정치권 전체를 통틀어 차기에서 저만치 앞서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내일을 모르는 게 정치다. 5년의 세월이면 산 첩첩 물 겹겹이다. 언제 먹구름이 몰리고 천둥번개가 칠지 누구도 모른다. 무림의 고수들이 때를 엿보는 것은 이런 묘미에 끌려서다. 이같이 불안한 앞날에서 가장 확실한 생존책은 대중의 지지다. 변화무쌍한 정치 세계에서 대중의 든든한 지지만한 지원군은 없는 것이다.
박 전 대표에게는 20% 고정 표가 있다. 어떤 상황에서도 여론조사를 하면 20%대가 뜬다. 배신을 모를 것 같은 견고한 지지자들이다. 대권을 꿈꾸는 자로서는 대단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여기에다 20명인지 30명인지 하는 국회의원이 있다. 박근혜 계파라 해도 무방할 추종세력이다. 그는 이 둘에 기반해 위세를 과시하고, 차기를 노리고 있다. 하지만 이 둘은 그의 가능성이면서 동시에 그의 한계다.
박 전 대표가 20% 벽을 뛰어넘은 적이 없다. 돌아보면 이명박 서울시장이 대권 의사를 표명하기 전에도 그랬다. 2004년, 2005년 고건 전 총리가 30% 안팎으로 뜰 때 그는 20% 초반을 맴돌았다. 이 시기는 박 전 대표가 각종 재'보선에서 연전연승을 이끌어낼 때이기도 했다. 한나라당에는 '노무현 반사이익'을 안겨주면서 정작 본인은 재미를 보지 못했다. 이명박 서울시장이 대권 선언을 한 2006년 이후는 주지하는 대로다. 이 당선자가 줄곧 40~50%대를 고공행진하는 동안 그는 20%대를 벗어나지 못했다. 한때 이 당선자를 30%대 중반까지 곤두박질시킨 BBK 반사이익조차 그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이렇게 보면 박 전 대표의 대중적 인기가 어떤 경계선상에 놓여 있는지를 극명하게 알 수 있다. 그에게는 죽어도 지지하겠다는 충성층이 있는 반면 70% 넘는 '反(반)박'이 요지부동인 것이다. 달리 말해 그의 미래는 '마의 30% 장벽'을 여하히 깨느냐에 달려 있다. 그래야 치고 올라갈 여지가 생겨난다. 이전과 다른 이미지, 새로운 리더십을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뉴 박근혜'를 보여줄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박수가 쏟아진 '아름다운 승복' 이후도 좋은 기회였다. 내친김에 대선까지 진두지휘했어야 했다. 그랬더라면 경선 패배를 인정한 '원칙'에 '통큰 리더십'까지 보태지는 감동을 대중에 심어주었을 것이다. 어느 시대나 '광폭의 정치'는 완고한 반대자마저 흔들리게 하는 법이다.
그러나 그는 경선 이후 다시 계파로 돌아갔다. 선거과정에 계파 몫을 따지고 다가올 공천을 문제삼았다. 당원의 도리를 내세운 선거 지원은 일정 수준을 넘지 않으려 했다. 유세마다 그가 후보 이름을 몇 차례 거론했느냐가 뉴스거리였다. 이회창 씨가 출마 선언했을 때는 5일 동안 침묵했다. 물론 이 씨의 출마는 정도가 아니라 했고, 스토커처럼 달라붙는 이 씨를 내쳤으며, 끝까지 이명박 후보를 외면 않은 게 어디냐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정권교체에 기여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20% 존재감'을 과시하고 만족한 데 지나지 않은 것이다. 새로운 감동은 주지 못 했다.
정치지도자가 자신을 따랐다는 이유로 불안해하는 사람들을 감싸는 것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의리도 자신의 미래에 보탬을 줄 때 가치가 있다. 한쪽을 악착스레 챙기면 다른 쪽은 장벽을 쌓는다. 그건 지혜롭다 할 수 없다. 그에게 지금 문제는 당내가 아니라 바깥이다. 일반대중이 선택하면 당은 따라온다. 이명박 당선자가 그 경우 아닌가. 얻으려면 버리라고 했다. 광장으로 나와야 너른 세상이 보인다. 텃밭만 지키다 말 것인가. 새 정부의 국무총리는 '뉴 박근혜'를 보여줄 수 있는 다시 온 기회다. 제의를 받는 게 맞다.
댓글 많은 뉴스
12년 간 가능했던 언어치료사 시험 불가 대법 판결…사이버대 학생들 어떡하나
한동훈 "이재명 혐의 잡스럽지만, 영향 크다…생중계해야"
[속보] 윤 대통령 "모든 게 제 불찰, 진심 어린 사과"
홍준표 "TK 행정통합 주민투표 요구…방해에 불과"
안동시민들 절박한 외침 "지역이 사라진다! 역사속으로 없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