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3색 녀]2. 정이현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

삶에서 '거짓'을 가려낼 수 있을까?

세련된 옷차림, 경쾌한 발걸음, 테이크아웃 커피, 빌딩숲…. 정이현에게 어울리는 것들이다. 도시감각이 어울리는 모습만큼 도시인의 삶을 그려내는데 탁월하다. 일간지에 연재되었던 '달콤한 나의 도시'는 출간 후 25만부 넘게 팔렸다. '쿨'하게 살아가는 도시 여성의 삶을 특유의 감각적 언어로 담았다. 영화로 만들어진다고 한다. 번역 출간된 일본에서도 반응이 좋다. 얄미울 정도로 "잘 나간다".

첫 단편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에서 현대적 악녀를 만들며 주목받았던 정이현. 등장하는 여성들은 한 결 같이 발칙하다.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순종적 모습을 가장한 여인들. 이번에는 여러 인물들로 이야기를 꾸몄다.

10편의 작품을 수록한 소설집 '오늘의 거짓말'. 이효석문학상을 수상한 '타인의 고독', 현대문학상을 수상한 '삼풍백화점'도 함께 묶었다. 제목 '오늘의 거짓말'처럼 각각의 작품에는 다양한 '거짓'이 있다. 남을 속이는가 하면 스스로를 속이기도 한다. 개중에는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처럼 거짓말 같은 일도 있다.

표제작 '오늘의 거짓말'의 주인공은 '거짓말'하는 것이 직업이다. 세상에 존재조차 알 수 없는 주민번호를 입력하고, 이름을 만들고, ID와 비밀번호로 회원가입 후 '리뷰'를 쓴다. 그녀는 직접 사용해보지도 않은 온갖 물건들에 '최고'라고 서슴없이 쓴다. 그것이 직업이니까 당연하다.

어느 날 위층에서 들리는 소음에 항의하러 갔다가 '박대통령'을 닮은, 그녀가 보기엔 똑같은 인물을 만난다. 더욱 황당한 것은 그 노인이 사용 중인 러닝머신이 그녀가 사용 후기를 올렸던 제품. "고요합니다. 아무소리도 안납니다"라고 했던 바로 그 물건.

그녀는 자신이 태어나지도 않았던 해에 죽었던 '그분'이 바로 위층에 살고 있다는 사실에 음모론을 제기한다. 혼란에 빠진다. 며칠 뒤 그녀는 자신의 실명으로 리뷰를 쓴다. "W사 러닝머신. 무지 시끄럽습니다." 회사를 그만둔다.

'거짓'의 연장선 위에 있기는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마찬가지. 교통사고로 생긴 여학생의 죽음을 은폐하는 부모('어금니'), 애인을 지키고자 그의 알리바이를 만드는 여자('익명의 당신에게') 등. '위험한 독신녀'에는 자신의 나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동창생이 나온다. 38살임에도 20대의 패션으로, 말투로, 자신이 20대인 양 착각 속에 살고 있는 동창생. 그녀는 스스로를 속이고 있다.

'어두워지기 전에'는 섹스리스 부부의 이야기다. 30대 중반의 아내는 섹스 없는 부부생활에 별다른 불만을 느끼지 않고 산다. 결혼 1년 뒤부터 부부는 '잠자리'에서 서서히 멀어졌다. 침대의 양 끝에서 잠을 자지만 문제는 없다고 여긴다. 수면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서로 배려하는 것일 뿐. 격정적이지 않지만 잔잔한 호수가 그들 부부 같다고.

어느 날 위층 아이가 살해됐다. 아무 이유 없이. 얼마 전부터 발생한 아이들 연쇄살인범과 동일범. 평소 남편은 위층 아이가 쿵쾅 거리며 뛰어다니는 걸 못견뎌했다. 공교롭게도 살인은 남편이 학원에 간 시간에 일어났다. '설마?'하는 마음에 학원에 확인한 결과 남편은 등록하지 않았다. 그리고 일련의 연쇄 살인 시간과 남편이 집을 비운 시간은 일치했다.

"왜 그랬어?" 울부짖는 아내의 울부짖음에 돌아오는 남편의 답. "불쌍한 여자야."

같은 부서 여직원과 사랑에 빠진 남편, 그 여자의 남편이 회사에서 난동을 부리는 바람에 사랑과 명예를 모두 잃어버린 사람. 부인은 그제야 그들의 '열정'에 질투를 느낀다.

여전히 그들 부부는 침대의 양 끝에서 잔다. '완전한 사랑을 얻기 위한 대가'였다며 지나치게 긍정적인 아내는 이제 아이 가질 준비를 한다.

결국 이 아내는 스스로를 속이는 것으로 평범한 삶을 선택했다. 얼마나 더 속고, 속여야 그녀가 바라는 완전한 사랑을 얻을 수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어쩌면 '거짓'을 생활 속에서 분리시키는 일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 노른자와 흰자가 명확히 구분되지 않는 계란찜처럼. 한 냄비 속에서 뒤섞이고 끓고 나면 그뿐이다. 그냥 계란찜이다.

거짓이니 위선이니 따지기에는, 삶은, 너무 빨리, 흘러가버린다.

정이현은...

1972년 서울 출생. 단편 '낭만적 사랑과 사회'로 제1회 '문학과 사회' 신인문학상 수상, 등단. 2004년 단편 '타인의 고독'으로 이효석문학상 수상. 2006년 단편 '삼풍백화점' 현대문학상 수상. 오늘의 젊은 예술가상 수상. 작품집 '낭만적 사랑과 사회' '오늘의 거짓말' 장편소설 '달콤한 나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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