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윤조의 수다수다] 질투

사랑의 필수조건인가?

에립 클랩튼의 명곡 '레일라(Layla)'는 사랑하는 여인 패티 보이드를 위해 만든 곡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패티 보이드는 비틀즈 멤버 조지 해리슨의 아내였다. 에릭 클랩튼은 지난해 발간된 자신의 자서전에서 "조지 해리슨의 완벽한 인생에 대한 질투심 때문에 당시 그의 아내였던 패티 보이드를 빼앗았다."고 고백했다.

살아오면서 누구나 한 번쯤 '내가 왜 이러지?' 스스로도 의구심이 들 정도로 강렬한 질투심에 사로잡힌 경험이 있을 것이다. 자신의 애인 혹은 배우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동성에 대한 뜻모를 분노와 적개감을 숨기고 애써 태연하려 전전긍긍해 본 경험도 있을 것이다.

질투 없는 사랑이 있을까, 사랑 없는 질투는? 사랑과 질투는 동전의 앞뒷면과도 같은 것이라는데….

질투는 여자의 전유물?

우리는 흔히 '시기'와 '질투'라는 감정을 한데 묶어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들 둘은 조금은 다른 개념이다. 언뜻 비슷한 것 같지만 미묘한 차이가 존재한다. 시기의 사전적 의미는 '행복, 성공, 명성 등 가치있는 것을 누리고 있는 사람의 우월함에 대해 불쾌감과 악의를 느끼는 것'.

반면, 질투란 사랑의 한 형태로서 사랑하고 있는 상대가 자기 이외의 인물을 사랑하고 있을 때 일어나는 대인 감정 같은 것을 말한다.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질투는 자신이 이미 가진 소중한 짝을 경쟁자에게 빼앗길지 모른다는 두려움을 포함한다."고 그 차이를 설명했다.

질투의 감정은 흔히 여성의 전유물로 생각된다. 남자들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여자들의 질투심이 얼마나 심한지. 제 여자친구는 제가 아는 여자들과 통화만 해도 날을 세워요. 하여튼 여자들이란 어쩔 수 없는 존재인가봐요." 옛날 여자들이 남편에게 소박을 맞을만한 7가지 조건, 칠거지악(七去之惡)에도 '질투'(嫉妬)가 들어있을 정도니, 남자들은 여자의 질투를 끔찍히도 싫어하고 겁냈나보다. 서양에서는 '모욕당한 여성의 분노와 같은 것은 지옥에도 없다.'는 격언도 전해진다고.

하지만 웃기는 말씀. 질투의 정도에 있어서는 성별차이가 없단다. "남자친구나 여자친구가 잡지에서 본 매력적인 남성과 딱 한번만 성관계를 가져보았으면 하는 환상을 느낀다면 얼마나 화가 날 것 같습니까?"라는 질문에 남성은 7점 만점에 3.42, 여성은 3.70으로 응답했다. 모두 비슷한 정도 화가 난다는 것으로 유의미한 차이가 없었다는 것. 수십편의 다른 연구들을 보아도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질투를 느낀다는 결론이 확인됐다고 한다.

질투의 성별차는 대응방식의 차이

"질투심을 겉으로 드러낸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자신감이 없다는 사실을 스스로 고백하는 것과 같잖아요. 웬만하면 여자친구에게 제가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 무던히 애를 쓰지만 감정을 숨긴다는 것이 쉽지는 않아요."

김승호(34)씨는 "예쁜 여자친구를 바라보는 남성들의 시선이 감지될 때면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오르지만 그렇다고 그 감정을 드러낼수는 없다."고 하소연했다. 질투심이란 나의 매력도가 상대방보다 떨어지기 때문에 불안감과 위협을 느낀다는 것이기 때문. 이는 여성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드러내놓고 질투를 하는 사람을 찾아보긴 힘들다.

대신, 연인이나 배우자의 관심이 나 아닌 다른 사람에게로 쏠릴 때 여성들은 주로 '외모가꾸기'라는 전략을 도입한다. 소현정(가명'37'여)씨는 "행여 남편이 내 모습에 식상함을 느껴서 다른 이성에게 관심을 둘까봐 솔직히 겁난다."며 "질투심을 드러내 오히려 역효과를 내기보다는 외모를 가꿔 나에게로 관심을 환기시키는 것이 현명한 대처법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반면, 남성들은 대처법은 좀 더 다양하다. 경쟁자에 대한 폄하하거나, 물질적인 과시에 좀 더 신경쓰거나, 상대에 대한 사랑의 표현을 증가시키는 등의 방법이다.

장세형(가명'27)씨는 "질투심이 무의식 중에 발동된 것인지는 알수 없지만 여자친구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못하다 싶을 때는 평소보다 애정표현 횟수가 좀 더 잦아지는 것을 스스로도 느낄 수 있다."며 "환심을 사기 위해 선물공세를 펴 본적도 많다."고 했다.

질투는 열정을 낳는 긍정적 에너지

질투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극의 원천이자 싹이었다. '질투로 인한 비극'하면 빠지지 않는 세익스피어의 오셀로. 그는 악당 이아고의 간계에 빠져 정숙하고 착한 아내 데스데모나를 죽였다.

지금도 이런 예는 흔히 발생한다. 배우자의 불륜을 참지못해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은 언론을 통해 심심찮게 보도되고, 질투망상으로 인한 상습폭행 등으로 정신과 신세를 지는 사람들의 숫자도 무시하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이 모든 비극에도 불구하고 질투는 사랑을 풍요롭게 하는 하나의 수단으로 인류에게 자리잡아 왔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질투를 느끼지 않는다면 사랑하지도 않는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 극단으로 치닫지만 않는다면 질투는 사랑하는 이들의 관계를 풍요롭게 하고, 자칫 식어버릴지 모르는 열정에 다시금 불을 붙이며, 상대가 얼마나 내게 헌신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게 해주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의도적인 질투 유발'을 하나의 전략으로 사용한다. 사랑을 확인하고, 상대방에게 내가 가치있는 존재라는 것을 확인시켜주기 위해서다. 강은경(29'여)씨는 "질투 작전을 적절하게 구사하면 애정을 유지하는데 이것만큼 도움이 되는 것도 없다."며 "사랑하는 사이에도 적절한 긴장감이 유지돼야 서로가 권태기에 빠져드는 일이 없다."고 했다. 강 씨는 남자친구 앞에서 다른 남자를 쳐다보며 '저 남자 정말 괜찮지 않아?'라고 말하기, 가끔은 애인이 화가날 정도로 무심한 태도를 가장하기 등의 전술을 사용한다고.

1931년 마거릿 미드는 "질투는 인간의 마음을 괴롭히는 반갑지 않은 존재로 목표를 달성하기 보다는 실패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 비효율적이고 부정적인 태도"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질투는 열등감을 자극하는 부정적인 태도가 되기도 하지만, 지금 자신의 모습을 좀 더 나아지게 만드는 좋은 자극제가 되기도 한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만약 서로 질투하지 않는 연인관계라면 얼마나 웃길것인가? 분명 이들은 파국으로 가는 계단을 천천히 밟아가고 있는 것이리라.

성적 혹은 감정적 배신, 어느쪽에 더 화 날까?

과거에 있었던, 또는 현재 진행 중인, 그도 아니면 미래에 형성될 헌신의 관계를 상상해보십시오. 그렇게 사랑하는 상대가 옛 애인을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다음 두 행동 중 어느 쪽이 더 용서하기 힘들겠습니까?

1)상대가 옛 애인과 열정적인 성관계를 맺은 경우

2)상대가 옛 애인과 깊은 감정적 유대를 형성한 경우

이 질문에 대한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총 530명의 남녀 중 남성의 67%는 상대의 성적 외도가 더욱 용서하기 어렵다고 대답한 반면, 여성은 44%만이 같은 선택을 했다. 비슷한 질문에 대한 또 다른 실험에서는 남성의 대다수(62%)는 성적 배신을 더 화나는 일로 꼽은 반면, 여성의 대다수(63%)는 감정적 배신에 더 화를 내는 것으로 드러났다.

남성의 질투는 성적 외도에 강하게 반응

왜 그럴까? '위험한 열정, 질투'라는 책을 쓴 진화심리학자 데이비드 버스는 "질투에서 나타나는 성별 차이는 인간이라는 종이 진화해 온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인간 생식의 생물학적 측면에서 나타나는 성별차이를 생각해보자. 수정은 남성이 아닌 여성의 몸 안에서 일어난다. 인간의 이런 특징은 곧 고대의 남성들에게 아이의 아버지가 누구인지 확신할 수 없다는 문제로 연결됐다. 따라서 고대 남성들의 시각에서 볼 때, 생식의 측면에서 아내가 저지를 수 있는 가장 큰 죄는 성적 배신, 즉 외도였다. 자칫 잘못하면 다른 남자의 아이를 키우느라 수 년, 아니 심지어 수십 년 동안 뼈빠지게 고생할 수도 있는 노릇이다. 남성의 질투는 사랑하는 여인이 부정을 저지를지도 모른다는 위협에 맞서기 위한 진화적인 반응이다.

반대로 여성들은 자신이 아이의 어머니라는 것을 100% 확신한다. 대신 고대의 여성들은 남편이 다른 여성과 그 자녀들에게 헌신하는 사태가 생길 수도 있다는 다른 문제에 봉착했다. 감정적 유대가 이런 비참한 상황을 가장 잘 나타내는 신호인 까닭에 여성들은 다른 여성에 대한 남편의 감정을 알려주는 단서들에 예민하다.

물론 성적 외도나 감정적 배신에 대해 남녀 모두 분노한다. 남성들도 자기 짝이 다른 남자와 감정적으로 가까워지는 것에 무심하지 않고, 여성들도 자기 짝이 다른 여자와 성관계를 맺는 것에 초연하지 않다. 다만 질투 경험을 털어놓아 보라고 하면 남성들은 성적 배신에 대해 더 많이 언급한다. 반면 여성들은 자기 짝이 다른 여자와 시간을 보내고 관심을 쏟고 우정을 나누고 웃는 등의 행동, 즉 감정적 배신에 대해 더 많이 이야기한다.

"일단 의심하는 편이 진화적으로 유리"

그래서 데이비드 버스는 "이런 관점들에 따르면 질투는 미성숙의 상징이 아니라 오히려 조상들과 오늘날의 우리가 계속 생존하고 생식할 수 있도록 해주는 대단히 중요한 감정이다."고 이야기한다.

그는 "일단 의심을 하고 질투하는 것이 진화적으로 유리하다"는 주장을 편다. 산길을 가다 발길에 무엇인가가 스치는 느낌을 받았을 때 '뱀일 것'이라고 의심하는 편이 태연하게 길을 가는 것보다는 위험에 대비하는데 훨씬 도움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의 상황이다.

데이비드 버스는 "질투는 '낮은 확률일지라도 일어날 수 있는 성적 배신의 가능성에 대비한다'는 점에서 배우자와의 관계에서 유리하다."고 했다. 무고한 배우자와 다투면 연인 관계가 깨질 수도 있기에 확실히 손해라고 볼 수 있지만, (너무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배우자가 내게 좀더 충실하게끔 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것. 그래서 아주 작은 단서로도 배우자의 부정을 추론하게끔 적응적 해결책을 마련해주었다는 것이 진화심리학자들이 질투를 바라보는 관점이다.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도움말='위험한 열정 질투'에서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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