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런 공간 어때요?]영화

극장에서 보기 힘든 영화를 만나는 즐거움

◇ 필름통의 영화보기

혹시 '피와 뼈'라는 영화를 보셨는지?

재일 교포 감독 최양일이 메가폰을 잡고, 기타노 다케시, 스즈키 교카 등이 주인공을 맡았다. 1923년 김준평이라는 인물이 조선을 떠나 일본 오사카 항구에 닿으면서 영화는 시작된다. 일본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는 '괴물'이 됐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괴물'의 괴물다움을 진저리치도록 보여준다. 매니아들은 이 영화를 기타노 다케시가 뛰어난 연기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연기를 보인 작품이라고 평가한다. 최양일 감독은 배우들의 연기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쥐어박으며 촬영했다고 한다. 2004년 개봉된 이 역작은 일부 극장에서, 그것도 매우 짧은 기간 상영됐다. 작품성 높은 영화 치고 흥행에 성공하는 경우는 드무니까 말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의 역작 '블레이드 러너' 역시 당시 'ET'에 가려 그 존재가 희미했다.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꿈처럼 아름다운 영화 '꿈' 역시 별로 알려지지 않은 영화다. 프랑스 흑백 영화 '빨간 풍선', 스탠리 큐브릭의 '샤이닝' 등도 우리에게는 낯선 영화다.

'필름통의 영화보기'는 이런 영화를 감상하는 공간이다. 제3세계 영화, 예술영화 등 극장에서 보기 어려운 영화가 중심이다. 그러나 대중과 호흡이 목표인 만큼 일부 매니아만을 위한 난해한 영화는 피한다. 아름다움과 예술성 때문에 오히려 '대중'과 만날 기회가 적었던 영화가 대부분이다.

'필름통의 영화보기'는 매일신문사 김중기 기자가 운영을 맡아 2003년 '갤러리 신라'에서 시작했다. 창립 멤버는 정미옥(화가 계명대 교수), 이용민(판 건축디자인 소장), 임언미(대구문화 편집장), 조미향(경신고 교사), 남인숙(큐레이터), 이광호(갤러리 신라 대표) 등 소수였다. 때때로 극장의 도움을 받아 시사회를 열거나, 소극장에서 열었던 '송년 영화감상' 행사 등에는 100여명의 관객이 몰리기도 했다. 이런 자리에는 유명 영화 감독을 초대해 함께 영화를 보고 이야기 나누는 이벤트도 열렸다.

'필름통 영화보기'는 2005년 분도 갤러리 소극장에서 바흐만 고바디 감독의 '거북이도 난다'를 상영하면서 100여명이 참석하는 성황을 이뤘다. 그 해 상영 장소를 연극 전용 소극장 '마카'로 옮기면서 매월 1회 영화보기가 정착됐다. 젊은 관객들은 극장에서 포도주를 마시며 영화를 감상했다. 아마 흡연자는 담배도 피웠을 것이다. 때때로 '휴대폰 진동으로 바꾸기 없기' 규칙을 정하고 영화를 감상하기도 했다.

2007년부터 영화보기는 레스토랑 빌라메디치(대구시 수성구 범어동)지하 사무실에서 매주 마지막 주 월요일 열리고 있다. 반 지하인 이 공간에는 3천여 편의 비디오와 1천200여 편의 DVD가 마련돼 있고, 30석 좌석에 120인치 스크린 프로젝터와 5.1채널 오디오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올 겨울 첫눈 오는 날 '닥터 지바고'를 볼 예정이지만 아직 눈다운 눈이 내리지 않아 영화대신 하늘을 보고 있다.

2007년 현재 '필름통 영화보기' 회원은 20여명. 초기멤버를 비롯해 화가 권기철, 치과의사 공정욱, 시인 이규리 씨 등이 참가하고 있다. 시인 이성복, 문인수, 소설가 김원우 씨 등도 종종 이 공간을 찾아 함께 영화를 감상한다. 예술가들뿐만 아니라 평범한 직장인들도 섞여 있다.

영화 감상이 끝난 후에는 이야기를 나눈다. 함께 본 영화 이야기와 더불어 개인의 특별한 작품이나 경험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한다. 심오한 철학이나 문학 이야기가 나올 때도 있고 시시껄렁한 농담이 오고갈 때도 있다. 참석자 중 1명이 주제발표를 하는 경우도 있고, 난상토론식 대화를 나누는 경우도 있다. 올 1월에는 화가 권기철 씨가 뉴욕 미술 탐방기를 사진과 함께 발표할 예정이다. '필름통의 영화보기'는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다만 진지한 태도와 참가하는 성의가 필요하다.

◆'필름통 영화보기'

△대구시 수성구 범어동 MBC 뒷편 아트리움 가는 골목

△문의 011-555-5949.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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