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는 밀실에서 그림을 그렸고 시인은 홀로 밤새워 시를 썼다. 가수는 무대를 독차지했고, 극장엔 늘 상업성 짙은 영화가 걸려있었다. 예술가들은 그들의 영역에 그들끼리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예술가와 시민이 악수하는 공간이 늘어나고, 시민이 문화예술의 주인공으로 참여하는 공간도 생겨나고 있다.
미술은 '시각 예술'이다. 대충 그렇게 알고 있다. 그러나 '대안공간 스페이스 가창'에서 이 통념은 힘을 잃는다. 이곳에서 미술은 시각을 넘어 후각과 살갗에 와 닿는 느낌, 온도까지 포함된 종합 예술이 된다. 이곳은 화실 가는 길을 모르는 시민과 화실에 갇힌 작가가 소통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스페이스 가창'은 2007년 6월 대구현대미술가협회(회장 이태현)가 폐교된 대구 가창초등학교 우록분교를 '창작스튜디오'와 '전시실'로 만든 곳이다. 지난해 7명의 1기 입주작가들이 여섯 달 동안 작업했고, 현재는 8명의 2기 작가들이 입주해 있다. 이들은 창작스튜디오를 제공받는 대신 월 40시간 이상을 이 공간에서 작업한다. 40시간이라고 정해놓았지만, 상당수 작가들은 거의 상주하며 창작에 몰두한다.
8명의 화가들이 입주해 작업중인 창작 스튜디오(화실)는 '색깔'과 냄새, 온도와 습도가 제 각각이다. 그래서 완성된 작품만 보아왔던 관람객들에게 물감냄새 배인 작가와 대화, 화실과 만남, 작업과정과 만남은 가슴 벅찬 행복이다. 이 스튜디오가 '밀실의 작가'들에게는 시민과 악수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열린 창작 스튜디오'는 근래 서울, 광주, 대전 등에서 개설됐고, 대구에서는 '가창 창작스튜디오'가 처음이다.
'가창 창작스튜디오'는 입주작가들이 경제적 부담을 줄이며 창작에 몰두할 수 있는 공간이다. 워크숍과 세미나, 오픈 스튜디오를 통해 경험을 나누고 창작의욕을 불태울 수 있다. 정규학업을 마친 작가들에게 이 공간은 일정한 구심점이 되기도 한다. 대구에 젊은 작가들을 모으는 효과도 있다. 시민들에게는 미술을 눈, 코, 입, 귀 등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공간이다. 보고 듣고 냄새맡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말이다.
작가의 화실개방은 기간이 정해져 있다. 늘 개방할 경우 작가의 작업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주작가 중에 만나고 싶은 작가가 있다면 전화로 약속을 정하고 방문하면 된다. 2기 상주작가는 모두 8명, 작품 형식과 성격은 다양하다.
▲ 김재홍은 생존을 위해 무리 짓는 생명들을 작품화한다. 화가에게 무리 짓기는 생명력의 다른 말이다. ▲ 마형석은 꿰맴질, 바느질을 통해 조각형태의 삶을 내면화하고 완성한다. 작가에게 꿰매기는 '어른'되는 과정이다. ▲ 박경아의 작업실은 산으로 둘러 싸여있다. 그 산들이 작가의 붓을 따라 캔버스로 들어온다. 작품이 늘어나면서 화실은 산이 되고 작가는 산 속에 있다. ▲ 윤우진은 인물을 그린다. 우리는 자신을 잘 감추지만 한번쯤 속내를 드러낸다. 작가의 눈은 바로 그 찰나에 머문다. ▲ 이지영은 사진, 영상, 사운드를 통해 공간과 생명을 표현한다. ▲ 장재철에게 캔버스는 바탕 혹은 보조자가 아니다. 캔버스의 각도와 관객의 위치가 작품을 새롭게 창조한다. ▲ 장숙경은 끊임없이 녹색 점을 찍는다. 정지된 점들의 연속이 파도의 역동을 만든다. ▲ 조용호의 작품은 타향에서 죽마고우와 마주치려는 마음, 고향 신작로에서 이방인과 조우하려는 욕망이다.
'스페이스 가창'의 전시실 역시 인상적이다. 옛 우록 분교 과학실을 개조해 만든 공간인데 천장이 높고, 오래된 서까래가 드러나 운치를 더한다. 이 공간엔 거의 늘 작품전시가 있다.
현미협 이태현 회장은 스튜디오 숫자를 더 늘려 더 많은 입주작가들이 머물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넓은 운동장을 시민 누구나 참여하는 설치미술 작업장으로 활용할 계획도 밝혔다. 어린이들에게 보는 아름다움을 넘어 만지는 재미를 가르쳐 주고 싶다는 것이다. 시민의 호응과 비용이 문제겠다.
조두진기자 earful@msnet.co.kr
◆'대안공간 스페이스 가창'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삼산리 옛 대구가창초교 우록 분교 자리(가창 스파밸리에서 청도방면으로 6km 지점 오른쪽 삼성병원 가는 길)
△문의/053)422-12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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