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이 20점이냐, 50점이냐?" 갑작스런 질문입니다. "20점이라는데 왜 자꾸 그래" "아니 초단이 30점인데 광이 어째서 20점이예요 50점이지" TV드라마의 화투놀이장면이 노부부의 설전을 점화시킨 것입니다.
사연을 들어보니 노부부의 공방은 연장전입니다. 지난밤, 노부부는 초저녁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한 잠을 자고 깨어났지만 겨울밤이 얼마나 긴지 동이 틀려면 한참이나 남았던 것입니다. 다시 잠들기도 어렵고 딱히 할 일도 없고 해서 화투를 치자는데 합의합니다. 이리저리 뒤져 오래된 화투 한모를 찾아낸 노부부, 우선 짝 맞추기를 합니다. 합이 마흔여섯 장, 두 장이 부족합니다. 솔 한 장과 매화 한 장이 없습니다.
빳빳한 새 달력 한 장을 뜯어냅니다. 직접 그려서 짝을 맞출 생각입니다. 한 때 화가로도 손색이 없던 노인, 모처럼 만의 작품 활동에 신이 났습니다. 진품과 분간할 수 없을 정도의 완벽한 그림이 완성되었습니다. "어때, 만든 것 표시나지 않지?"
몇 십 년 만에 처음 치는 화투라 그 흔한 고스톱도 잊어버렸습니다. 합의 끝에 민화투놀이를 하기로 결정합니다. 무늬가 같은 것을 가져와서 계산을 하는 단순한 방식입니다. 문제는 계산입니다. 고스톱도 지방마다 규칙이 다르듯이 민화투도 지방마다 계산방식이 조금씩 다릅니다. 강원도와 포항이 각각 고향인 노부부, 계산이 일치될 리 없습니다. 더군다나 처녀총각 때 즐기던 계산방식조차도 잊어버린 지 오래입니다. 계산을 둘러싼 부부의 갑론을박은 동 틀 때까지 지속됩니다. 그래서 아직 첫 번째 화투판이 끝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느 분이 돈을 따셨어요?" 부아를 돋우려는 심산에서 아들이 한 마디 보탭니다. 옛말에 거래는 붙이고 싸움은 말리라고 했지만 두 노인의 아웅다웅하는 모습이 너무나 예쁩니다. "돈은 무슨 돈, 그냥 쳤지, 돈 걸었으면 지금쯤 난리가 났을 걸, 네 엄마 승부욕 알잖아" 노인의 빈정거림에 약이 오른 노파, "너희 아버지 돈 내기할 위인이 아니다, 다 늙은 다방 애들 커피 사주느라 맨~날 다방에 출근해야하는데 쌈짓돈이 남아있겠니?" "내가 언제 맨~날 가노?" "하루 두 번이 맨~날 아니고 뭐예요"
티격태격 질투하는 모습이 청춘남녀입니다. 치열한 접전에서 꽃냄새가 솔솔 풍깁니다. 부족한 두 장의 화투장을 채운 것은 그림을 그린 두 부부의 마음입니다. 화투놀이는 마흔여덟 장의 동양화가 아니라 두 장의 마음으로 하는 놀이라는 것을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이정태(경북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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