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맘 먹고 옷 한 벌 장만하기로 했다. "남들은 명품도 잘만 걸친다는데 나만 이렇게 지지리 궁상떨며 살 필요있어? 그래, 오늘은 제대로 한번 지름신을 영접해봐야지." 굳게 마음먹고 의기양양하게 백화점으로 향한다. 하지만 이내 입이 쩍 벌어질 수밖에 없다. 코트 한 벌 가격이 60만원대. 깃에 퍼(fur 털소재)라도 달려있을라치면 100만원대까지 육박한다. 나오는 것은 한숨 뿐. 결국은 매장을 이리저리 뱅뱅 돌다 '기획상품, 이월상품 대전'이라는 안내문이 붙은 '매대'로 가서 한 벌에 20만원대의 코트를 집어들고 만다.
◇옷값의 비밀, 원가는?
옷값의 원가는 사실 그리 비싸지 않다. 아무리 비싼 옷이라도 원가가 20만원을 넘어서는 옷은 찾아보기 힘들 정도. 원가만 따진다면 고급옷이나 저가의 옷이나 큰 차이가 있지도 않다. 원단에서 발생하는 가격차이, 공임의 차이 등으로 인해 옷의 질에 상당한 차이를 가져오기도 하지만 수십만원을 뛰어넘을 정도로 가격격차가 벌어지지는 않는다고. 급격하게 가격차이가 벌어지는 것은 브랜드에서 백화점으로 상품이 넘어가는 단계에서 제조원가의 5배 정도가 곱해지기 때문이다.
이렇게 비싼 가격이 책정되는 것은 의류 유통과정 때문에 발생한다. 아무리 디자인이 잘 된 제품이라도 100% 정상가에 팔려나가기는 쉽지 않다. 업계에서는 '3'4'3 원칙'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다. 생산량의 30%만을 가격표에 부착된 정상가격으로 판매하고, 40%는 세일기간에 팔아 적정 마진을 남기고, 나머지 30%는 원가 혹은 그 이하 가격의 '땡처리'를 통해 소진하는 것을 말한다. 2005년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서 발표한 '의류시장 보고서'에 따르면 남성복의 경우 정상가격으로 구입하는 비율은 22.1%에 불과했다고. 그러다보니 자연히 옷에 붙어있는 가격표에는 원가만을 감안한다면 납득하기 힘든 높은 금액이 찍힐 수밖에 없는 것이다.
디자인 실패에서 올수 있는 '위험부담'도 있다. 아무리 유명 브랜드라도 신상품으로 내놓은 10개의 디자인이 다 히트할 수는 없는 법. 대박인 디자인이 있으면 쪽박인 디자인도 있게 마련인 것이다. 업체들은 해외 유명 브랜드의 신상품을 카피하기도 하고, 국내 다른 브랜드의 잘 팔리는 제품을 발빠르게 모방해내는 전략도 구사해보지만 '팔리는 옷'을 만들기는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보니 판매에 실패하는 일부 디자인에 대한 비용을 '잘 팔리는 옷'에다 전가할 수밖에 없는 노릇인 것이다.
◇ 거품이라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이를 '가격거품'내지는 '업체의 부당이득'쯤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이에 대해 업체들도 할말이 많다. 유통마진을 줄일 수 있다면 옷값을 충분히 낮출 수 있다는 것이 업계관계자들의 주장이다.
그 중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바로 백화점 수수료. 한 의류업계 관계자는 "평균 30~35%에 달하는 높은 백화점 수수료에다, 매장 직원의 급여, 각종 판촉행사비까지 부담하다보면 많게는 옷값의 55%까지 백화점의 몫으로 떨어진다."고 했다. 100만원의 옷을 한 벌 팔면 그 중 55만원은 백화점에 돌아가고, 나머지 45만원 중 원가를 제외한 20~30만원 수준의 비용이 업체에 돌아온다는 이야기다. 그 돈으로 브랜드 광고비와 디자인 개발비, 직원들 월급과 각종 기업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제반 비용을 부담해야 하니 의류업체 입장에서는 썩 남는 장사는 아니라는 주장.
또 이들은 "옷값은 원가로만 따질 것이 아니라 브랜드를 소비하는데 따르는 부가가치도 인정을 해줘야 하지 않느냐"고 주장한다. 우리가 옷을 사기위해 지불하는 돈의 상당수는 '브랜드가치'를 사는 것, 회사의 입장에서는 '좀 더 큰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한 섬유업 종사자는 "정말 싼 옷을 원한다면 서문시장에 가서 옷을 사입을수도 있지 않느냐."며 "브랜드를 선호하면서 그 가치를 지불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심리"라고 지적 했다.
◇ 현명한 소비전략은?
백화점 세일기간 중 7만9천원에 코트 한벌을 장만한 최현주(가명'여'31)씨. "정말 횡재한거야."라고 내심 쾌재를 불렀다. 매장 직원도 "이 정도 가격이면 돈 버는 거라니까요. 지난해 디자인이긴 하지만 얼마전까지 15만 8천원에 팔던 물건을 며칠전부터 절반으로 가격을 내린 제품이거든요. 몇 장 안남았으니 고민하지 말고 사가세요."라고 최 씨를 부추겼다.
하지만 정말 '횡재'한 것이 맞을까? 집으로 돌아와 옷에 붙은 태그를 들여다 본 최 씨는 사기당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옷의 소재는 폴리에스테르와 레이온 혼방. 요즘 유행하는 알파카는 1%도 없었고, 그 흔한 모직마저도 쓰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7만 9천원 짜리는 딱 그만큼의 가치만을 가진 상품이었을 뿐, 최 씨가 더 나은 옷을 저렴하게 구매한 것은 아니었던 것이다.
옷값이 너무 천정부지로 치솟다보니 많은 소비자들이 백화점의 '이월상품'이나 '기획상품'에 눈독을 들인다. 브랜드 옷을 좀더 싼 가격에 살 수 있다는 매력 때문. 하지만 명심해야 할 사실이 있다. '공짜는 없다'는 것. 싼 옷은 저렴한 만큼 소재나 바느질, 디자인 면에서 조금의 부족함이 있다는 사실을 감안해야 한다.
이월상품은 말 그대로 철이 지나거나 지난해 판매되던 상품. 최신유행을 따라잡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지만 저렴한 가격에 좀 더 질 좋은 상품을 살 수 있는 방법이다.
기획상품을 살 때는 주의해서 꼼꼼히 살펴야 한다. 판촉을 위해 저단가로 주문'제작되는 일종의 미끼상품이다보니 같은 브랜드 제품이라도 기획상품은 원단부터 부자재, 바느질, 원산지까지 정품과는 판이하게 다른 경우가 많은 것. 기획상품이라고 다 나쁜 것은 아니지만 자신에게 꼭 맞는 소재나 옷의 마무리 상태 등을 꼼꼼히 살펴 사는 것이 좋다.
이 때문에 '쇼핑의 고수'들은 "기획상품보다는 이월상품을 사는 것이 좋다"고 조언한다. 매장에서는 기획상품과 이월상품은 구분하지 않고 판매하는 경우가 많아 이를 따지기가 어렵지만, 제조일자를 잘 살피면 눈치챌 수 있다고.
한윤조기자 cgdream@msnet.co.kr
사진'정재호 편집위원 newj@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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