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경제칼럼] '實用主義(실용주의)' 시대

오늘날 중국을 경제대국으로 올라서게 한 바탕을 만든 인물은 당연 등샤오핑(鄧小平)이다. 수차례 실각과 복권을 되풀이한 그의 사상은 實用主義(실용주의)로 대표된다. 그는 꼭 30년 전인 1978년, 10년을 넘게 지속해온 문화혁명을 종결시키고 실용주의를 앞세워 권력을 거머쥐었다. 그가 내세웠던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黑猫白猫論(흑묘백묘론)이나 남쪽으로 오르든 북쪽으로 오르든 산꼭대기에 오르면 그만이라는 南爬北爬論(남파북파론) 주장은 아직도 실용주의의 교과서처럼 회자된다. 그의 흑묘백묘론엔 경제가 중요한 것이지 이념이 문제가 아니라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처럼 실용을 내세웠던 그가 못사는 백성들을 향해 한 약속은 집권 기간 소득을 '판량판(飜兩番·10년마다 2배)'하겠다는 것이었다. 이 약속대로 중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978년 226달러에서 2002년에는 970달러로 뛰었다. 중국인들은 지금도 등샤오핑의 실용주의 시대를 살고 있고 경제는 확산일로를 걷고 있다.

중국에 등샤오핑이 있었다면 베트남엔 호찌민(胡志明)이 있었다. 1980년대 중반 베트남은 다른 사회주의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국제적으로 격리되고 경제적 위기는 악화일로였다. 이때 등장한 것이 베트남 지도부의 호찌민식 실용정신에 입각한 도이모이(Doi Moi) 정책이다. 도이모이 정책이 추진된 지난 20여 년간 베트남은 비약적 경제발전을 이뤄냈다. 베트남 지도부의 실용적 리더십은 베트남 건국과 독립의 아버지라 불리는 호찌민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호찌민 사상은 개인우상화와 절대 권력을 배격하면서 국가 발전에 실익이 되는 일은 어떠한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는 실용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같은 호찌민의 사상은 그의 사후 40년 가까이 되도록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10년 만에 좌파정권을 종식시키고 '실용'을 앞세운 정권이 출범을 준비하고 있다.

대통령 당선인 스스로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은 이념이 아니라 실용을 선택했다."고 밝혔을 만큼 이명박식 경제 살리기의 해법도 실용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대통령직인수위는 연일 이에 부응하는 정책들을 쏟아내고 있다. 16일 발표된 작은 정부도 그 중 하나다. 작은 정부의 핵심은 조직의 슬림화다. 출발선에 선 이명박 정부가 몸무게부터 줄이기로 한 것은 바람직하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열심히 뛰도록 하기 위해서는 조직의 슬림화는 필수적이다.

노무현 정부 동안 늘어난 공무원 수가 11만 명을 넘는다는 통계가 있다. 33명이던 장관 수는 40명으로 늘었다. 각종 위원회 수도 김대중 정부 말 364개에서 52개가 늘어난 416개가 되었다. 우리는 큰 정부가 갖는 비효율을 지난 5년간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세계 경제성장률을 밑돈 사실에서 확인한다.

작은 정부는 세계적인 추세다. 사르코지 프랑스대통령은 지난해 5월 당선 후 정부 조직의 군살을 빼기 위한 강도 높은 개혁에 나섰다. '유럽에서 가장 비대한 정부'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것이 프랑스 정부다. 사르코지는 정부부처를 절반으로 통폐합하는 등의 100가지 야심 찬 정부개혁안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당 당수로 총리에 선출된 케빈 러드 호주총리마저 세계적 추세인 작은 정부로 탈바꿈하기 위한 개혁 작업에 착수했다. 보수파의 단골메뉴였던 작은 정부를 좌파 정부가 추진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이뿐 아니다. 러드 총리는 조직슬림화를 통해 총리실 장관실 등 직원을 최고 30%까지 감축하겠다는 안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영국은 지난 2001년 일찌감치 26개 부처에서 17개 부처로 조직개편을 완료했다. 러시아는 2004년 23개 부처를 14개 부처로 줄인 후 국제사회에서 다시 강대국으로서의 면모를 찾아가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이 같은 추세에 동참하고 나선 것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이를 다시 보면 비정상을 정상으로 돌려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실천이다. 이전에도 새 정부의 출범을 앞두고 각종 대책들이 쏟아져 나왔지만 결과는 허무했던 적이 많다. 실용정신에 입각한 알뜰하고 유능한 정부가 끝까지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정창룡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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