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상생의 땅 가야산] (28)화엄종 근본 도량 해인사

1200년 지켜온 '지혜의 등불'

▲해인사 일주문을 지나 대적광전 찾아가는 길. 스님들의 수행처인 해인사와 수백 년된 고목들이 뿜어내는 청정한 기운에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해인사 일주문을 지나 대적광전 찾아가는 길. 스님들의 수행처인 해인사와 수백 년된 고목들이 뿜어내는 청정한 기운에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1천200여 년의 세월을 간직한 고사목.
▲1천200여 년의 세월을 간직한 고사목.
▲겸재 정선이 그린
▲겸재 정선이 그린 '해인사전경'. 하늘 향해 치솟은 가야산, 아름다운 홍류동 계곡, 그리고 고즈넉한 해인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가야산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뇌리에 떠오르는 존재가 해인사다. 해인사(海印寺)는 한국 화엄종(華嚴宗)의 근본 도량이자, 우리 민족 믿음의 총화라 할 수 있는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을 모신 사찰로 너무나 유명하다. 성철 스님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승(禪僧)을 많이 배출한 것으로도 이름이 나 있다. 창건된 지 1천200년이 넘은 해인사! 그 유구한 세월 동안 이 땅을 비추는 지혜의 등불이 되고 있다.

천년의 세월을 간직한 고사목!

해인사 가는 길. 왼편으로 홍류동(紅流洞) 계곡이 펼쳐진다. '붉게 물든 단풍이 계곡물에 비쳐 붉게 흐르는 것처럼 아름답다.'는 홍류동 계곡은 매서운 겨울 추위에 스산한 풍경이다. 하지만 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 울창하게 쭉쭉 뻗은 적송이 코끝을 아리게하는 맹추위와 한데 어우러져 어느 계절보다 더욱 청정한 기운을 선사한다.

큰 사찰에 들어설 때 처음 만나는 것이 일주문(一柱門)이다. 절의 어귀에 서있는 일주문은 모든 중생이 성불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의 첫 관문을 상징한다. 옆에서 보았을 때 기둥이 하나로 겹쳐 보인다고 해서 일주문이란 이름이 비롯됐다. 해인사 일주문은 '홍하문(紅霞門)'이라고도 한다. 일주문 일대의 수목들이 단풍이 한창 들 때 일주문과 절묘한 조화를 이루면서 마치 붉은 색 노을이 끼는 듯하다고 해서 이런 이름을 얻었다. 그 소박한 아름다움과 주위 경치와의 어우러짐이 일품이란 생각이 든다.

일주문을 지나고 나면 말라 죽은 나무가 보인다. 느티나무인 이 고사목은 해인사가 창건될 때 심어진 나무로 알려져 있다. 1천200여 년의 세월 동안 해인사를 묵묵히 지켜오다 1945년 고사하고 말았다. 고사목 부근에 있는 염주석이란 이름의 돌도 흥미롭다. 불이 잦았던 해인사의 화재예방을 위해 설치한 돌이다. 화기(火氣)를 누르기 위해 바다의 기운을 지닌 소금을, 돌 안에 넣어 묻어 놓은 것이다.

삼라만상이 비치는 바다!

바다 해(海), 도장 인(印)자를 쓰는 해인사의 이름은 어디에서 비롯됐을까. 해인이란 '화엄경'의 '해인삼매(海印三昧)'에서 따온 말이다. '해인삼매'는 풍랑이 일던 바다가 잠잠해지면 삼라만상이 모두 바닷물에 비치는 것같이 온갖 번뇌가 끊어진 고요한 상태를 일컫는다. 풍랑이 일던 바다가 매일매일 끊임없는 고뇌에 휩싸여 있는 중생들의 마음을 비유한 것이라면 풍랑이 멈춘 고요한 바다는 깨달음을 얻은 부처의 마음을 비유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해인사가 창건된 것은 802년. 신라 애장왕(哀莊王) 3년이다. 해동 화엄종의 초조(初祖) 의상대사의 법손인 순응(順應) 화상과 그 제자인 이정(利貞)화상에 의해 창건됐다. '해인사지(海印寺誌)'엔 창건과 관련된 설화가 실려 있다. 애장왕의 왕후가 등창병이 났는데 아무런 약을 써도 효험이 없었다. 사신이 두 스님을 찾아와 치료법을 물었다. 두 스님은 오색실을 사신에게 주면서 "이 실 한 끝을 궁전 앞에 있는 배나무에 매고, 다른 한 끝을 아픈 곳에 대면 병이 나으리라."고 했다. 그대로 시행했더니 배나무는 말라 죽고, 왕후의 병은 나았다. 감읍한 애장왕은 전답 2천500결(結)을 보내오고, 창건 공사를 직접 감독하기도 했다.

일주문에서 노거수 사이로 약 100m가량 비탈진 길을 오르면 '해인총림(海印叢林)'이란 편액이 걸린 3칸 맞배집이 나온다. 총림이란 승려들의 참선수행 전문도량인 '선원', 경전 교육기관은 '강원', 계율 전문교육기관인 '율원' 등을 모두 갖춘 사찰을 말한다. 총림으로는 우리나라에서 해인사를 비롯해 5개 사찰뿐이다.

불이(不二)의 참 뜻을 마음에 새기며!

해인사의 제3문인 '해탈문(解脫門)'을 지난다. 불이문(不二門)이라고도 한다. 불이는 둘이 아닌 경지라는 뜻으로, 근본 진리는 오직 하나이고 둘이 아니며 하나를 깨달으면 백 가지에 통할 수 있다(一通百通)는 것을 의미한다. 너와 내가 둘이 아니며, 만남과 이별도 둘이 아니라는 뜻을 담고 있다. 나아가 시작과 끝도 둘이 아니고, 삶과 죽음이 둘이 아니며, 부처와 나도 둘이 아니라는 깊은 뜻도 있다.

'구광루(九光樓)'를 거쳐 해인사의 주법당인 '대적광전(大寂光殿)'을 찾는다. 대적광전 앞 계단 석재들은 장경판전 뒤편에 있었던 돛대바위를 이용해서 만든 것이다. 돛대바위는 해인사가람에 있어 선장 역할을 하던 존재였는데 일제 때 일본 장교가 돛대바위를 깨트리고 그것을 이용해 지금의 계단을 만들었다.

비로자나불을 모시고 있는 대적광전에는 여섯 개의 주련이 있다. 주련(柱聯)은 기둥이나 벽에 장식으로 써서 붙이는 글귀를 일컫는다. 정면에서 봤을 때 오른쪽 두 점은 고종이, 나머지 네 점은 고종의 생부인 흥선대원군이 쓴 글이다. 15세 때 쓴 고종의 글씨가 단아한 반면 흥선대원군의 글씨는 세상의 풍파를 견뎌낸 그의 인생처럼 활달하고 거칠 것이 없다. '곳곳에서 부처님의 공덕을 찬양하네'란 뜻을 적은 주련에서는 처음 한 번만 처(處)자를 쓰고, 두번 째 처자는 같은 글자라는 의미로 이수(冫)만 쓰는 호방함도 흥선대원군은 보여주고 있다. 대적광전에는 네 개의 현판이 있는데 안평대군과 해강 김규진의 글씨가 걸려 있다.

1천200여 년의 세월을 간직한 해인사에는 둘러봐야 할 곳이 너무도 많다. 느린 걸음과 여유로운 마음을 갖고 경내를 거닐다보면 어느사이 마음이 깨끗해진다. 다시 일주문을 나오는 길. 해인삼매의 뜻을 되새겨본다. 고요한 바다에 삼라만상이 비치듯이 모든 세상 사람들의 번뇌와 망상의 파도도 멈춰 평온한 바다처럼 마음이 평안해지기를 기원해본다.

글·이대현기자 sky@msnet.co.kr

박용우기자 ywpark@msnet.co.kr

사진·박노익기자 noik@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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