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레 23일엔 3억 미국인들이 좀 별난 행사를 한다. 휴대폰과 컴퓨터 字版(자판)만 두드리며 살다가 이날 하루만큼은 연필이나 펜으로 글을 쓰는 것이다. 매년 1월 23일이 '全美(전미) 글쓰기의 날'이기 때문이다.
올해로 31번째가 되는 '펜으로 글 쓰는 날' 행사는 1977년 WIMA 주도로 지정됐다. WIMA는 연필이나 볼펜 등 필기도구를 생산하는 기업들의 모임인 '미국 필기구 製造社(제조사) 연합'이다. 볼펜이나 연필 같은 것을 많이 팔아보자는 속셈도 있겠지만 그보다는 현대인들에게 손으로 글을 쓰는 것의 중요함을 일깨우자는 게 글쓰기 날 행사의 참뜻이라고 주장한다.
글쓰기의 날을 제정한 WIMA 측은 현대인들이 빠르고 편리한 것에 익숙해지면서 정작 인간적인 숨결이 배어나오는 손 글씨의 감성 커뮤니케이션 중요성은 잊어가고 있다고 말한다. WIMA의 宣傳(선전)이 아니라도 인간의 정감과 마음을 전하는데 있어 肉筆(육필)만한 것이 없다.
레이저 프린트나 이메일, 휴대폰의 문자메시지로 보내는 사랑의 편지나 감사의 글이 손으로 쓴 육필 편지나 일기보다 감동을 덜 주는 건 사실이다. 인터넷 문자가 아무리 글꼴이 다양하다 해도 손끝에서 쓰여지는 펜글씨의 독특한 개성이나 종이 위에 배어나온 情感(정감)을 대신할 수 없다.
WIMA의 홈페이지에는 손으로 글 쓰는 것이 우울증이나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화(분노) 치유와 체중감량 등 건강에도 도움을 준다는 연구결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뉴욕타임스도 필기도구 회사들이 정감과 개성이 가득한 육필이 점차 사라질 것이라고 우려하지만 걱정할 것 없다며 위로하고 있다.
실제로 컴퓨터 메일과 휴대폰 문자메시지가 폭발적으로 늘어나지만 여전히 매년 140억 개의 볼펜과 연필이 꾸준히 팔리고 있고 연평균 3~4%의 성장률이 지속되고도 있다.
우주인들 用(용)으로 개발됐다는 전천후 특수 볼펜은 볼펜심을 한 번도 갈아 끼우지 않고도 50년을 쓸 수 있다. 물속에서 써지는 것은 기본이고 영하 50℃에서도 잉크가 얼지 않고 매끄러운 유리 위에도 써진다. 한국에서도 선물용으로 꽤나 팔렸다. 18억 원짜리 아네모네 만년필도 생산된다. 손으로 글쓰기의 참뜻은 그런 필기구의 값 얘기보다는 아날로그 세대가 썼던 편지나 일기에서 더 큰 의미와 감동을 찾아볼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길고 오래 쓴 편지는 일본 건설장관을 지낸 우이치 노다 씨가 부인에게 쓴 편지로 1961년 7월부터 아내가 죽기 전까지 24년간 1천307통을 썼다. 1만 2천404쪽, 단어로 치면 500만 단어가 넘었다. 요즘 한국의 남편들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평생 동안 몇 통의 편지를 쓸까. 1년 내내 흔해 빠진 문자메시지 한 줄 안 보내고 사는 남편이 수두룩할 거란 짐작이 간다. 일기도 마찬가지다. 숙제검사에 밀려 겨우겨우 쓰던 학창시절 일기가 고작인 게 솔직한 우리들 보통사람들의 세상살이다.
12세 때 쓰기 시작한 일기를 103세 138일째 세상 뜨는 날까지 91년간 썼다는 짐바브웨 육군대령(어네스트 곤투두스) 얘기는 기네스북의 특별난 逸話(일화)지만 우리는 편지든 일기든 너무 안 쓴다. 굳이 안 길어도 좋다. 짧은 편지로도 얼마든지 큰 감동을 전할 수 있다.
편지 역사상 가장 짧은 편지는 소설 레 미제라블을 쓴 빅토르 위고가 자신의 책이 얼마나 잘 팔리는지 궁금해 출판업자 허스트에게 '?'라고 쓴 편지다. 허스트가 대박 터졌다는 뜻으로 보낸 답장 역시 '!' 부호 하나가 전부였다. 내용이 어떻든 짧든 길든 손으로 쓴 글은 기계가 찍어낸 글씨보다는 감동을 준다.
23일 하루 손 글쓰기 날이 지나면 또다시 컴퓨터를 두드리고 휴대폰에 엄지를 누르겠지만 세상이 변해가도 가끔은 연필을 잡고 편지 한 통 일기 한 줄이라도 써보는 감성 있는 삶을 살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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