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경옥입니다] 버려야할 것들

건망증 때문이겠지만 필요한 물건을 찾지 못해 난감할 때가 종종 있다. 어딘가에 있는 것은 분명한데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감이 안 잡히는 것이다. 온데 들쑤셔 놓다시피 헤적이노라면 머릿속이 하얗게 비면서 '바보가 된 게 아닐까' 자괴감마저 들기도 한다. 그러다가 한참 후 우연히 눈에 띌 때도 있지만 어떤 것들은 고집불통처럼 여전히 숨어있다. 10여 년 전 외국서 사온 새 구두를 한 번도 신어보지 못한 채 집안 어딘가에 고이 모셔두고만 있기도 하다. 샅샅이 뒤진다면 찾아낼 수 있겠지만 번거로운 생각에 아예 포기해버리곤 한다. 다행히 주변 사람들 중에도 이런 물건 찾기 건망증으로 자주 머리가 뜨끈거린다고 하니 미상불 위안이 되기는 한다.

새해라 집 정리를 했다. 올해는 좀 정리정돈하면서 살겠노라, 마음을 다잡고 보니 버려야 할 것들은 왜 그리도 많은지 내심 놀라게 된다.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십 년씩 해묵은 잡동사니들이 곳곳에서 튀어나온다. 구닥다리가 된 스페어용 단추, 한쪽만 남은 귀걸이, 오래된 수첩, 병아리기자 때부터 지금까지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취재노트 더미, 해묵은 연하장과 크리스마스 카드, 한 번도 실행하지 않은 TV요리강좌의 요리법을 적어둔 메모지, 제대로 사용하지 않은 가전품, 다이어트에 성공하면 입으리라며 십 수년째 옷걸이에 걸려있는 옷들….

책 '단순하게 살아라'의 공동 저자인 베르너 티키 퀴스텐마허와 로타르 J 자이베르트는 더 쉽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의 하나로 "버려야 할 것은 과감하게 버려라"고 조언한다. 인생을 복잡하게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서 결여돼 있는 것이 바로 '단순함'이라고 지적한 그들은 불필요한 것들을 미련없이 버리고 정리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위한 중요한 조건이라고 강조한다.

그러고 보면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수시로 정리해야 할 또 한 가지가 있다.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로 시작되는 하덕규의 '가시나무새'노래 구절마따나 '내 속의 너무 많은 나'다. 1960년대 히피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던 서양의 영적 지도자 구르지예프도 말했다. '인간은 자신을 옭아매고 있는 수천 가지의 사소한 집착물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켜야 한다. 그것들 때문에 인간 안에 수천 명의 쓸데없는 가 살아가고 있다. 큰 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이렇게 수많은 가 죽어야 한다'고.

논설위원 sirius@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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