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윤성도의 오페라 이야기] ⑨죠반니 마르티넬리

베르디의 생각까지 노래한 가수

죠반니 마르티넬리(1885~1969)는 천성적으로 울림이 큰 소리를 갖고 태어났다. "'부라보 죠반니' 당신의 목소리가 이태리뿐 아니라 전세계를 상대로 앞날을 보장해줄 것이다."라고 푸치니가 1912년 회고하고 있다. 얼마 후 대소프라노 클라우디오 무찌오(1889~1936)와 라스칼라에서 '마농 레스코'를 공연한다.

그의 외모는 약간 검은 얼굴에 수사자처럼 헝클어진 머리칼, 훤칠한 키의 미남자였다. 마르티넬리는 아우렐리오 페르틸레(1885~1952)와 이태리 몬따냐냐 동향인으로 2주 먼저 태어났으며 카루소보다 12년 후배이다. 처음 맡은 역은 '아이다'의 메신저역이었으나, 1910년 12월 3일 밀라노 베르메 가극장에서 로씨니의 '스타바트 마테로'로 데뷔한다.

말도니에게 훈련을 받았으며 3주후 '에르나니'에 출연했을 때 객석에서 지켜본 푸치니와 토스카니니에 의해 발탁되어 '서부의 아가씨' 유럽 초연에 딕 조슨역을 맡게 된다. 1913년 '라보엠'으로 메트에 들어가 1946년 은퇴할 때까지 33년간 그곳에서 활동했고, 38종의 오페라를 총 926회 출연했다. 카루소 다음가는 가수였으며 질리와는 각기 다른 영역을 양분하는 대등한 위치였다.

카루소는 그에게 매우 좋은 인상을 가져 '팔리아치' 공연때 한 번 입었던 의상을 빌려주는 등 호감을 가졌다. 1921년 카루소가 죽자 그 뒤를 이어 드라마틱 테너의 계승자가 되었다. 그의 음성은 리릭 드라마틱이라 해야 더 정확하다. 음성은 우아하다기보다 진실하고 강인했으며 리리코 스핀토적인 요소가 많다. 우렁찬 소리가 호흡의 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이 마치 치약 튜브를 짤 때 나오는 치약처럼 솟아올랐다. 딕션은 약간 과장되기도 한다.

그는 특히 베르디 전문가수(Verdian) 였다. 좋아한 오페라는 '트로바토레'와 '아이다'였다. '트로바토레'야 말로 가장 베르디를 가까이 느낄 수 있다고 할 정도였다. 1912년 몬테 카를로에서 '트로바토레'를 노래할 때만 해도 이해가 부족했다. 1914년 10월 공연을 앞두고 토스카니니는 두시간 이상 되는 오페라를 50회 이상 리허설을 시켰는데 그 이후 베르디의 진정성을 깨닫게 되었다.

1920년대 카루소, 질리는 그의 동료였으나 선의의 경쟁자이기도 했다. 특히 명테너 쟈코모 라우리 볼피(1892~1979) 등은 그를 험담하여 카루소 흉내를 낸다고 비난하기 때문에 그는 일부러 음색을 어둡게 표현하려고도 했다. 그의 음성의 특징은 카루소나 질리처럼 나이가 들어도 전혀 바리톤적인 요소가 끼어 있지 않는 점이다.

그는 평생 4천500회의 오페라 출연을 했으며 2천 회는 베르디의 작품이다. 베르디는 성악과 성악가를 이해할 줄 알아서 하이 C 음은 악보에 잘 쓰지 않았다. 그가 B 플렛을 피아니시모 내기 힘들자 대선배 제나텔로 (1876~1949)의 실패담을 듣기도 했다.

제나텔로는 B 플렛을 포르테로 강하게 밀어 올리다 실패했을 때 85세의 베르디가 용기를 주었다고 회고했다. 베르디 작품외에도 '카르멘' '파우스트' '예언자' 등 프랑스 오페라도 공연했다. 1937년 52세 때 코벤트 가든에서 '오텔로'를 불러 크게 히트했다. 82세에도 '투란도트'에 나왔던 그는 1969년 2월 2일 뉴욕에서 영면한다.

윤 성 도(시인·계명대 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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