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웃사랑)"천신만고 끝에 딸은 살렸습니다만…"

날품 팔며 사는 임상철씨

▲ 임상철 씨의 베트남인 아내(22)가 신장 기능이 멈춰버린 채 태어난 아기 예진이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돌보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 임상철 씨의 베트남인 아내(22)가 신장 기능이 멈춰버린 채 태어난 아기 예진이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돌보고 있다. 이채근기자 mincho@msnet.co.kr

수화기를 들고 한참을 기다렸지만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학병원의 사회사업팀과 동사무소 복지사를 통해 들은 그의 처지를 익히 아는지라 쉽게 전화를 끊을 수 없었다. 네 번째 시도 끝에 한 사내의 건조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시끄러운 바람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흘러들었다.

임상철(45) 씨는 하루 일당 3만 원을 받고 화물 차량 옆 조수석에 몸을 싣고 부산으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가족 관계를 묻자 그는 난처해 했다. 상처 가득한 가족의 삶을 하나씩 끄집어내는 그의 목소리에선 '습한 기운'이 감돌았다. 미안했다. 한국말이 서툰 그의 베트남 아내(22)를 통해 사연을 듣기에는 어려움이 많아 그에게 전화를 한 것이었다. 대화가 길어지자 누군가 그를 탓하는 소리가 들렸다. 서둘러 조심해서 다녀오라는 말로 인사를 대신했다. 고맙다는 말을 수없이 뱉어내는 그에게 오히려 고마움을 느꼈다. 무너져가는 가정을 만신창이가 된 몸뚱이로 지켜내는 그의 듬직함이 고마웠고 한편으론 안쓰러웠다.

지난해 11월, 그는 오매불망 기다리던 '희망'을 안게 됐다. 마흔네 살의 나이에 힘겹게 피붙이 딸을 얻은 것이다. 그는 딸에게 바르고 참되게 살라는 의미로 '예진'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하지만 세상은 그의 행복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예진이는 태어나자마자 세상의 빛보다 수술대 조명 빛을 먼저 마주해야만 했다. 태생적으로 한쪽 신장의 기능이 멈춰버린 채 태어난 아이는 소변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나머지 한쪽 신장 역시 소변이 나올 수 있는 공간이 막혀 있었다. 바로 수술대로 옮겨진 예진이는 3㎏의 작은 몸으로 힘겨운 고통을 견뎌냈다.

퇴원 후 한 달이 흘렀을까. 또다시 예진이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덮쳤다. 어깨 쪽으로 골수염과 관절염이 동반돼 찾아왔다. 엉덩이엔 농양이 생겨 있었고 패혈증 증세마저 나타났다. 면역이 약한 아이는 균을 이겨내지 못하고 몸 곳곳에서 문제를 일으켰다. 살려야 했다.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수 없었다. 항암 치료와 동시에 감염을 예방할 수 있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했다. 다행히 예진이는 대구 한 대학병원에 입원한 지 한 달 만에 병마와 싸워 기력을 회복했다. 대견했다. 그는 딸아이에게 아비의 사랑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는 예진이를 퇴원시킬 수 없었다. 병원비가 그의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올해 일흔여덟의 노모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그의 과거엔 희망이 없었다. 연이은 사업 실패와 노모의 병마로 그의 생계는 언제나 빠듯했다. 돼지 등뼈를 납품하는 사업이 구제역 파동으로 부도를 맞았을 때 그는 삶을 마감하려는 생각까지 했다. 하지만 그해 우연히 베트남 여성과의 결혼 중매가 들어왔다. 삶을 바꿀 수 있는 기회였다. 그는 난생 처음 희망을 품었다고 했다. '틴티베'라는 이름을 가진 베트남 아내는 사랑을 가져다줬다. 하지만 어렵게 꾸린 그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했다.

"행복할 수 없는 박복한 팔자를 타고났나 봅니다. 전세금 천만 원을 빼 아이 병원비를 대고 나면 네 식구 갈 곳이 없네요. 이 못난 아비를 예진이가 용서해 줄까요."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의 목소리에서 삶의 위태로움이 묻어났다. 저희 이웃사랑 계좌는 069-05-024143-008 대구은행 (주)매일신문사입니다.

정현미기자 bori@msne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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