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불공단의 전봇대 옮기기가 뉴스거리로 등장하였다. 지난 5년간 수많은 민원에도 나 몰라라 하던 한국전력이 주말 공휴일 빗속에서 전봇대를 옮긴다고 난리 법석을 떨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이 현장중심의 살아있는 정책개발과 실제 효과를 수반하는 규제개혁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주문에 따른 것이라 어쩐지 뒷맛이 개운하지 않다.
규제개혁은 역대 모든 정부에서 역점시책으로 제기되거나 추진되어 온 사안이다. 참여정부는 산업의 경쟁력 제고를 통한 일자리 창출을 위해 총리실 산하에 규제개혁기획단을 설치하여,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강력한 규제개혁을 추진하였다. 다양한 분야별로 규제의 내용과 절차에 관한 로드맵을 작성해 추진한 결과 1천300여 개의 과제에 대한 규제개혁의 성과를 발표한 바 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도 정부 조직개편의 후속작업으로 각종 행정·정책규제의 대대적인 정비작업에 착수하였다. 대통령실에 국정기획수석이 관장하는 규제개혁추진단을 두고, 대통령의 리더십과 정책적 판단을 활용하여 향후 규제개혁을 강도 높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표방하고 있다.
새 정부는 '자율과 경쟁' 등 시장원리에 기초하여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경제·산업뿐만 아니라 교육, 국토이용, 건설, 금융, 방송통신, 의료, 노동 등 거의 모든 분야에 걸쳐 현장 중심의 규제개혁을 실천한다는 계획을 밝히고 있다.
규제란 정부가 민간에게 요구하는 다양한 수단들로서 경제적 규제, 사회적 규제, 행정적 규제의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경제적 규제는 생산, 가격, 경쟁, 시장진퇴 등과 관련된 정부 개입행위를 말하며, 사회적 규제는 건강, 안전, 환경, 사회적 결속과 같은 공공 이익을 보호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하고 있다. 행정적 규제는 행정절차 및 문서와 관련된 것으로 행정의 간소화, 투명성·능률성 향상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이들 중에서 경제적 규제와 행정적 규제에 있어서 '개혁'은 대체로 '완화' 혹은 '철폐'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시장에서의 경쟁과 혁신을 저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하여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고, 이를 위해 행정적 절차와 행위를 단순화하여 정부부문의 능률성을 제고하고자 한다. 새 정부가 지향하는 규제개혁도 같은 맥락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다.
이러한 새 정부의 국정방향에 과잉 충성하여 공무원들이 경쟁적으로 규제완화 건수 올리기에 집착하지 않을는지 걱정이 앞선다. 경제 살리기를 외치면서 소비자의 후생이나 국민의 건강을 경시하거나, 기업 친화적 정책을 최우선하면서 근로자의 최소한 권익을 무시하거나, 일자리 만들기에 집착하면서 일터의 안전과 위생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있다.
또한 수도권의 성장에 만족하여 지방의 피폐화를 간과하거나, 대기업의 입장을 대변하여 중소기업의 어려움에 무관심하거나, 경쟁원리를 강조하여 장애인과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도외시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규제개혁'을 단순히 '규제완화' 혹은 '규제철폐'와 동일시하는 것은 매우 위험한 결과를 초래한다. 우리 역사상 최대의 환경재앙을 가져온 태안반도 기름유출사건과 최근에 발생한 경기 이천 냉동창고 화재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최소한의 안전장치 마련과 그 이행을 엄중히 강제하는 규제 장치는 필수적으로 요청된다. 이처럼 국민의 생명, 건강, 안전 등과 관련된 사회적 규제와, 시장실패를 치유하기 위한 경제적·행정적 규제는 오히려 강화될 필요가 있다.
규제개혁은 단순히 양적 혹은 수적 감소에서 벗어나 규제의 품질 개선을 염두에 두고 추진되어야 한다. 규제를 만드는 과정에서부터 그 필요성, 유형, 대상, 비용부담, 적용 가능성, 융통성, 효과성 등에 중점을 두어 규제 자체뿐만 아니라 그 규제의 실행방법과 파급효과까지 검토하여야 한다. 또한 규제의 집행이 자의적으로 행해지지 않도록 그 절차를 엄격히 하고, 합목적성에 기초하여 철저한 사후평가를 받도록 하여야 한다. 따라서 규제개혁은 부분적인 규제완화의 차원을 넘어, 규제품질과 규제관리의 차원에서 절차적, 제도적, 시스템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결론적으로 규제는 건수 중심의 '완화'만이 능사가 아니라, 그 효과를 중심으로 '품질'을 꼼꼼히 따져보면서 철저히 '관리'하여야 하며, 필요한 곳에는 반드시 있어야 한다.
김렬 영남대 정치행정대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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